아베 총리는 이날 보스턴에 있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자택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 미국 순방의 첫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 날인 27일엔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학에서 연설하고 질의 응답도 진행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통해 일본이 미국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뉴욕에선 미ㆍ일 양국의 외교ㆍ국방 장관 연석회의가 열린다. 이 회담에선 미ㆍ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동안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이란 원죄로 인해 채워졌던 일본의 군사적 족쇄를 풀어나가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 역할 확대를 통해 해외에서 군사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정상 국가'에 한발 다가서는 셈이다. 미국은 막대한 국방비 지출 부담도 덜면서 일본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중국 군사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군사ㆍ경제적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에 인심쓰듯 호응하면서도 일본의 실리는 최대한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아베총리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 동참하는 대가로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도 노리고 있다.
이번 방미의 하일라이트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미 의회 상ㆍ하원 합동 연설이 될 전망이다. 전후 일본은 줄곧 미국의 맹방을 자부해왔지만 그동안 일본 총리는 의회 합동 연설에 나서지 못했다. 전범국이란 멍에와 함께 일본이 전쟁 범죄 등 과거사에 대해 분명한 사과와 화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패전국이지만 메르켈 총리 등 독일의 지도자들이 일찌감치 미 의회 합동연설에 나설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27일 오후 워싱턴 DC에 도착해 알링턴 미 국립묘지와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다.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사과는 회피한 채 미국 및 서방권에 대해 평화 애호 국가 이미지 부각에 주력하겠다는 계산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8월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 방문도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란 점을 부각시켜 과거사 이슈를 건너뛰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한편 아베 총리는 워싱턴DC 방문을 마친 뒤 서부로 이동, 오는 30일 샌프란시스코, 다음 달 1일 로스앤젤레스 등을 방문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방문 시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미국 내 판매를 위한 세일즈 외교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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