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퀴즈다. 다음 중 최고의 거짓말은? ①"앞으로 이 회사에서 뼈를 묻겠습니다"고 더듬거리는 신입사원의 취중 웅변. ②"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야" 하는 남편(또는 아내)의 속삭임. ③"에~ 또 우리 회사는 직원을 가족같이…"로 시작하는 사장님의 일장연설. ④"대한민국 최고의 맛집"이라는 인터넷 추천글.

답이 헷갈린다면 이것은 어떤가. 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정치인들의 레퍼토리. 과연 ①~④가 '어서 옵쇼, 형님' 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거짓말의 절대지존이지 않는가.
마르틴 루터는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고 경계했지만 범인(凡人)들은 살아가면서 '착한 거짓말'을 종종 한다. 우울해 보이는 여자 동료에게 "어, 살 빠졌네" 한 마디 툭 던지거나(절대 진지하게 말해서는 약발이 떨어진다), 가뭄 짙은 머리에 인위적 풍작의 결실을 맺은(우리는 이를 '가발'이라고 부른다) 선배에게 '주윤발' 닮았다며 반색하거나, 실수가 잦은 후배에게 "괜찮아, 조금 더 분발하면 돼"라고 격려하거나.

지극히 이타적인 이런 착한 거짓말(때론 사실도 있다)이라면 마땅히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본분이다. 하지만 사회를 좀먹는 나쁜 거짓말이라면? 나쁜 거짓말로 인해 세상이 부패해진다면?

'성완종 판도라 상자'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목숨을 끊으면서 터트린 비리폭로의 의혹을 받는 국무총리가 역시 '목숨'으로 맞서는 모습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판도라 상자가 거명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는 모르는 일이다" "절대 돈을 받지 않았다" "황당한 소설이다"고 항변하지만 국민들은 눈에서 쌍심지가 돋는다.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으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는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를 속이고 마침내 거짓을 사실로 확신해버리고 마는 유체이탈의 정신구조 말이다.

진실을 갈구하는 의혹의 한복판에서,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하는 것도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수천 수만 번 가슴을 쥐어짜지만 기어코 1년 전 그날이 오고 말았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거짓말이었어야 했는데, 이런 악몽이라면 얼마든지 화들짝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을 텐데, 슬픔이 전국을 덮는다. 그러니 오늘 만큼은 세상의 모든 나쁜 거짓말들이 침묵해야 한다. 고해성사라도 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실존적인 세월호 앞에서.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돈 없으면 열지도 못해" 이름값이 기준…그들만의 리그 '대학축제' [포토] 출근하는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 곡성세계장미축제, 17일 ‘개막’

    #국내이슈

  • '심각한 더위' 이미 작년 사망자 수 넘겼다…5월에 체감온도 50도인 이 나라 '머스크 표' 뇌칩 이식환자 문제 발생…"해결 완료"vs"한계" 마라도나 '신의손'이 만든 월드컵 트로피 경매에 나와…수십억에 팔릴 듯

    #해외이슈

  • 서울도심 5만명 연등행렬…내일은 뉴진스님 '부처핸섬' [포토] '봄의 향연' [포토] 꽃처럼 찬란한 어르신 '감사해孝'

    #포토PICK

  • 3년만에 새단장…GV70 부분변경 출시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교황, '2025년 희년' 공식 선포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