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낱말의습격]편집기자 디스카운트(268)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신문사의 기자 중에는 취재기자가 있고 편집기자가 있다.(사진기자는 취재기자에 포함되며 교열기자는 ‘취재’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집기자와 닮아있으니, 대표적으로 두 종류의 직무로 나눠보자.) 취재기자는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체육부 등에서 근무하는 기자이고 편집기자는 편집부에서 일하는 기자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취재기자는 기사를 취재해서 쓰는 사람이고, 편집기자는 그 기사를 신문에 싣는 사람이다.

시인 기형도는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발령이 났을 때 죽고싶을 만큼 싫었다. 그가 문화부 데스크에게 개긴 괘씸죄에 따른 유형(流刑)이었기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와 지금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편집부는 취재부서의 유배지로 여겨질 만큼 기자들에게는 누추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취재부서 선배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그 친구는 편집부 있기는 좀 아까워. 재능을 썩이고 있는 셈이지.” ‘편집부 있기는 좀 아까워’라는 그 말은 내게 강한 울림으로 남았다. 그 선배의 관점은 사실 많은 취재기자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편집기자 곤조’라는 말이 있었다. 곤조는 근성(根性)이라는 일본말인데, 외래어로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표현의 오래된 이력이 짚인다. 취재기자의 시선으로 보면 편집기자가 턱없이 오기를 부릴 때가 많다. 현장의 상황과 사정도 모르면서,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반대 의견부터 내놓는다.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면 알아듣는 게 아니라 괜히 성질만 버럭버럭 내면서 안된다고 고집을 피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자기네들은 스스로 편집국의 수석(首席)부서라고 하지만 취재기자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수석(水石, 빼어난 돌) 부서다. 즉 꼴통들이다. 이 꼴통짓을 왜 하는가. 뿌리깊은 열등감과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많은 취재기자들은 짐작한다. 물론 지금이야, ‘곤조’와 ‘곤조 기자’는 대체로 사라졌고, 취재와 편집의 의사 소통은 상당히 긴밀해졌다.

편집기자는 그들이 갖춘 능력에 비해 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견들이 있다. 편집기자의 일은 대개 세 가지다. 뉴스 가치를 평가하는 일과 지면을 구성하는 일과 제목을 다는 일이다. 뉴스를 평가하는 일은 취재데스크와 편집국장이 하는 주업(主業)이기도 하다. 취재기자가 아닌 편집부 기자가 뉴스 평가를 하는 것이 취재원이나 ‘현장의 동굴’에 휘둘리지 않고 훨씬 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식(常識)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뉴스 평가는 대개 취재 부서장의 몫이거나 취재 부서장의 이력을 지닌 편집국장의 몫이다.

편집기자의 뉴스 평가 기능은, 가치의 서열이 바뀌어도 크게 상관없는 ‘1단 짜리 뉴스가치’들의 평가로 한정되기에 이르렀다. 기사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 편집기자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된 배경에는, 편집기자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전문성이 없는 풋내기 편집기자가, 지면의 그림을 직접 그린다는 이유로 기사의 크기와 위치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그들이 기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즉흥적이고 자의적으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났고, 그 결과 편집기자의 ‘기사 가치 평가’ 기능은 상당 부분 퇴화되었다.
지면을 구성하는 일 또한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는 직무이다. 미학적 지식과 재능, 혹은 디자인 감각은 편집기자에게 상당히 중요한 역량이지만, 그들을 채용할 때 그런 걸 테스트하는 관행은 아직 별로 없다. 그런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을 뽑아 선배들의 작업을 곁눈질시켜 그런 감각을 익히도록 하는 게 대개 이 바닥의 관행이었다. 그 선배들 또한 그렇게 배웠다. 물론 취향과 적성들이 고려되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감각과 안목을 전문성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비주얼 편집의 바람이 불면서, 지면 구성의 혁신이 중요한 신문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일부 편집기자들은 그 바람을 타고, 자신의 숨은 끼를 드러내며 명성을 날리기도 했고, 어떤 편집기자들은 그 바람에 드러난 자신의 ‘무능’에 좌절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편집디자인을 ‘편집기자의 끼와 개인적 재능’에 의지하기 보다는 이 방면의 전문가의 힘을 빌려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나타난다. 각 신문사마다 디자인 코치를 두는 관행은 이런 생각들의 결과이다. 편집기자들의 지면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관점은, 오랫 동안 나름대로의 미감으로 지면을 꾸려온 편집기자들에게 그 동안 한 일의 정체에 대해 회의를 하게 만든다. 과연 내가 해온 레이아웃은 무엇이었지?

요즘 많은 신문들이 외치는 지면 디자인은 오로지 서구 신문들이 지닌 미학이다. 그것을 적당히 잘 베끼고 응용해야 좋은 신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제동없이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독자 환경이나 한글서체의 특징, 그리고 그간 신문이 모색해온 우리 특유의 지면 미감(美感)은 일단 무시된다. 지금까지 편집기자가 한 일은 적당주의와 무식이 이뤄놓은 날림공사에 가까웠다. 이제 ‘디자인’이라는 학문과 과학이 도입되어 편집기자의 정체성을 심문한다. 너희가 레이아웃을 아느냐?

마침 이와 때를 맞춰 편집기자가 직접 조판을 하는 업무체제가 도입된다. ‘디자인’이란 고급한 소프트웨어는 이제 전문 ‘지면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편집기자는 그냥 조판과 그 주변의 일들을 좀 더 많이 맡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편집기자의 레이아웃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생각. 최근 편집기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절망케하는 핵심 상황이다.

제목을 다는 일 또한 편집기자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편집기자가 단 제목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자주 고쳐진다. 20년간 제목만 달았다고 비감하게 우기더라도, 그를 제목전문가라고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현장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취재기자의 의견이 편집기자의 주장보다 비중있게 다뤄지는 일이 잦다. 이 추세로 간다면 편집기자는 곧 없어질 직종이며, 취재기자가 제목을 달게 될 날이 곧 올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편집기자가 제목을 다는 까닭은 뭘까? 취재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무식’의 혐의를 받으면서 왜 편집기자들은 그토록 끙끙대며 제목을 달아왔을까. 취재 환경과 정황, 그리고 기획취지 따위에 대해 시시콜콜이 알고 있는 사전지식이 오히려 제목 달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기자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제목은 기사와는 다른 또다른 ‘압축적 표현’의 영역이기에 나름대로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을까.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집기자의 무식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편집기자는 ‘무식함’을 먹고 산다. 신문에 실리는 각종 뉴스와 정보들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높게 마련이다. 독자들이 흔히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신문은 따분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는 독자들이 모르는 것들이 가득해야 한다. 편집기자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기사를 자기의 ‘무식함’의 눈높이로 낮춰 제목을 다는 역할을 한다. 편집기자가 다는 제목들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쉽고 감성적인 소통방식이다. 그래야 독자의 눈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식함을 이유로, 편집기자의 카피를 취재 쪽으로 넘기려 하는 상황이다.

편집기자의 세 가지 밥그릇은 저마다 너무 크고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사실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긴 셈이 되었다. 편집기자를 진심으로 전문가로 쳐주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뉴스가치 평가 전문가도 아니며 지면 디자인 전문가도 아니며, 또 카피 전문가도 아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편집국 일꾼에 가깝다. 편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생각이 곧 편집기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다. 편집이 고급직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편집기자는 취재기자들보다 조금 얕잡는 관행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왜 이런 관점들이 생겨났을까. 자신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내보일 만한 ‘독창성’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름없는 기자는 시적(詩的)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폼나는 노릇은 아니다. 취재기자들이 편집부에 발령이 났을 때 취재원으로부터 받는 전화 대화를 우연히 듣는 일이 있다. 그때 기자는 자신이 이 부서에 순환으로 잠깐 왔음을 강조하는 태도가 역력하고, 여전히 취재기자의 입장을 견지하려 애쓴다. 물론 취재원을 관리해두려는 마음이 있기도 하겠지만, 자신이 편집기자라는사실은 대외적으로 좀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편집기자는 정확히 말해서 글을 쓰는 사람인 ‘기자(記者)’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에서 기자가 아닌 직종으로 옮겨왔으니, 그 불균형에 관해 해명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편집국 내에 흐르는 불균형의 공기이며, 그 기자의 내부에 깃든 ‘편집부 디스카운트’의 마인드맵이다.

이런 현상이 취재 부서의 오만이나 편견 혹은 어리석음에서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편집 직무의 특징 만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며, 또 편집기자의 태만이나 무능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신문시장 전체의 요동과 맞물린 현상으로 봐야할 지도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가를 따지는 일이 의미있는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이 ‘복합 비전문가’들이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다. 그들은 아무도 그것에 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섭다.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외국인환대행사, 행운을 잡아라 영풍 장녀, 13억에 영풍문고 개인 최대주주 됐다 "1500명? 2000명?"…의대 증원 수험생 유불리에도 영향

    #국내이슈

  • "제발 공짜로 가져가라" 호소에도 25년째 빈 별장…주인 누구길래 "화웨이, 하버드 등 美대학 연구자금 비밀리 지원" 이재용, 바티칸서 교황 만났다…'삼성 전광판' 답례 차원인 듯

    #해외이슈

  • [포토] '공중 곡예' [포토] 우아한 '날갯짓' [포토] 연휴 앞두고 '해외로!'

    #포토PICK

  • 현대차 수소전기트럭, 美 달린다…5대 추가 수주 현대차, 美 하이브리드 月 판매 1만대 돌파 고유가시대엔 하이브리드…르노 '아르카나' 인기

    #CAR라이프

  •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