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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평양냉면 즐기기와 자유민주주의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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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신범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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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탈북자 출신 기자가 2012년 쓴 글에 흥미로운 말이 나온다. 평양에 '서울냉면' 같은 식당이 있다면 매우 이상한 일인데, 서울 시내에는 '평양냉면'이라 쓰여 있는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어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을 남한의 것으로부터 완벽히 차단시키려는 북한 정권의 의도는 일종의 결벽증 같아 보인다. 남한의 최신식 문화나 경제 발전상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체제 붕괴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 우려하는 것 같은데, 그런 가설은 지나친 비약인 데다 간판 이름을 제한하는 것 같은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막아지는 일도 아닐 것이다.
반면 평양냉면을 즐긴다는 것에 북한을 추종하는 혐의를 두는 바보짓이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 정도 다양성은 인정해주는 '자유민주주의' 덕에 기자는 올 한해 평양냉면을 족히 50그릇은 '버젓이' 먹은 것 같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가 '융성'하고 있는 남한에서도 어떤 결벽증의 결과라 할 만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대다수 국민이 '위협'이라 느끼지 않았던 어떤 허무맹랑한 집단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공중분해 시켜버린 사건이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요구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주도한 것이었으므로 현 정부가 가진 결벽증 혹은 건강염려증과 유사한 심리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북한이나 우리나 결벽증에 대한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작은 개미구멍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뜻을 가진 '제궤의혈(堤潰蟻穴)'로 요약된다. 문제는 작은 개미구멍이란 게 정의도 모호한 데다 사회 도처에 수도 없이 많을 터이고, 의도했든 아니든 평범한 사람들이 개미구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명 날 두려움을 가슴 한 편에 담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평양냉면을 간혹 즐기는 것은 괜찮지만 1년에 50그릇을 넘기는 사람들은 우리 전통음식의 발전을 저해하고 북한 친화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이른바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개미구멍'으로 분류돼 공중분해 될 운명에 처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기자는 점심식사의 다양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에 평양냉면 즐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니, 나름의 변호 논리를 개발해놔야겠다는 생각을 지난 며칠간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최고 법관 중 한 분이 너무나 상식적이며 명확한 논리를 대신 마련해줘 참고해볼 생각이다.

"본인이 평양냉면을 즐기는 식성을 가지고 있고, 북한 사람들도 추구하는 방향이 같다고 할 수 있으므로 본인의 식성이 북한 사람들의 그것과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인이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유사성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북한 음식으로 메뉴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신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람들의 식성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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