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에 빠져 본 기억이 있습니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머리 속으로 자신만의 온갖 소리와 모습으로 상상하죠.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은 누구나 화가요 시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만의 색깔과 소리를 입혔을테고 그것을 손자 손녀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냈을 것입니다.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러시아의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살 때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프랑스 화가 클로드 오스카 모네의 ‘건초 더미’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했답니다. 얼핏 보기에는 밀레 풍의 단순해 보이는 그 그림 한 장에서 칸딘스키는 무엇을 느꼈기에 그의 인생 행로를 바꾸게 했을까요.
저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런 충격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충격을 실제로 자신의 삶에 녹여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창의’가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1866년 바실리 칸딘스키가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그가 추상화에 몰입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는 허상이고 실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성 속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상, 즉 본질을 표현하려면 추상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음악, 문학, 예술은 서로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감상하고는 “모든 색을 보았고 그 색이 춤 추는 것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그림 속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으로 음악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죠. 그에게 미술은 눈으로 듣는 음악인 셈입니다.
비슷한 예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네덜란드 피에트 몬드리안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 감정은 대상의 외형 때문에 방해 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외형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추상화에서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詩)가 산문보다 상황을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마음 놓고 시를 읽을 수 없고,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위대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을 까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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