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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불·돈' 화마에 휩쓸린 구룡마을을 떠도는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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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11일 화마가 휩쓸고 간 구룡마을 7-B지구. 출입 통제선 너머로 집의 형태는 사라지고 폭삭 내려앉은 나무 자재들과 집기들이 불에 그슬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삶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듯한 리어카와 목재들 사이로 그을린 가스통이 위태롭게 곳곳에 놓여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브리핑을 하기 위해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세식 강남소방서장은 구룡마을에 대해 "쉽게 탈 만한 물건도 많은 데다 차량 진입도 어렵고 소화전도 멀리 있다"며 "소방관으로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구룡마을을 방문한 한 시간 반의 시간은 구룡마을의 해묵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간이었다. 안전문제를 방치한 채 대립에 골몰해온 시와 강남구는 잠시 싸움을 멈췄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꺼질 줄 몰랐다.
이날 오후 구룡마을을 찾은 박 시장은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 "화재가 취약한 지역인데 충분히 방비가 안 됐던 것 같다"며 "근본적으로 제대로 개발이 돼서 주거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것이 늦어져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구룡마을 이재민들에게 임시로 임대주택을 제공하겠으며 임대주택 조건이 안 되더라도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현장 방문 후 구룡마을 주민회관에 들어서자 주민들의 성토가 계속됐다.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회장은 "아파트도 30년이 지나면 재개발을 하는데 여기는 낡은 목재들이 30년이 지나 삭아 화재위험이 크다"며 "6지구 같은 경우는 화재가 나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강남구가 일부러 불을 내는 것 아니냐" "오늘 밤에라도 화재가 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입주민들은 이번 화재가 시와 강남구의 싸움에 예견된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 개발을 두고 각각 환지(換地) 방식, 100% 공영개발을 주장하며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개발방식 이견으로 시간을 끌다 화재 사망사고까지 발생하자 이날 만난 박 시장과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구룡마을 재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협의해서 이런 사고가 없게 하자"고 하자 신 구청장은 "연초에는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도록 시장님이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측이 원론적인 합의를 약속했지만 재개발 사업 추진이 실무적으로 될지는 미지수다. 구룡마을 개발 갈등의 이면에는 '돈'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 문제가 있는 시는 환지방식을 도입해 토지보상금 800억원을 줄이고자 한다. 강남구는 서울시 방식으로 하면 개발 예정지의 절반 정도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개발이익을 독차지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일부 이재민들은 언제 개발이 시작될지 모른다며 임대주택 제공도 거부하고 있다.

화재사고로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시와 강남구가 주민안전을 외면한 채 개발방식 선정에만 힘을 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세식 서장은 개발 방식 다툼으로 매년 화재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삶도 그렇고, 안전문제도 그렇고 소방관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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