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아는 것은 정말 힘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말의 취지 또한 그것이었고, 베이컨이 강조한 뜻도 또한 그것이었다. 자기성찰이야 말로 지식의 바탕이며 그것이 삶의 문법을 전혀 새롭게 짜는 기틀인 것을, 요즘에야 깨닫는다. 우리의 문제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모르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평생 경영해가야 하는 자기를 모르는데에 있었다. 그냥 조금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혹은 통, 모른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자기가 아니라 자기를 비춘 이미지와 욕망들이었다.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최초의 방편이다. 나 자신은 내가 생각했던 만큼 안전하고 괜찮고 중요하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나 자신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곧 죽게 되어있다는 것. 처음에 올 때 내가 가져온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소멸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과 관계하던 나의 우주의 문제라는 것. 나와 해와 달과 별 다섯개와 그 너머의 수많은 별들까지에 이어져있는 생기(生氣)의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 우리는 어머니는 볼 수 있어도 어머니 속에서 나를 만든 진짜 어머니는 보지 못한다는 것. 내가 왜 여기 있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 어제가 오늘보다 좋았다면 어제에 그냥 있는 게 좋을텐데 왜 오늘로 옮겨왔을까. 누가 나를 등 떠미는 걸까. 계속 무덤까지, 그 건너까지 등을 떠밀어주는 그 차갑고 조용한 손은 누구란 말인가.
생각해보라. 나여.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으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보라. 나는 왜 목말라하며 나는 왜 슬퍼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인지. 나의 남은 수명의 첫날에, 왜 내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그날처럼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소크라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너 자신을 아는 것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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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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