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幽體)는 몸에 깃들어있다고 말하는 영(靈)을 표현한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괴테 등 옛사람들도 유체가 이탈한 경험의 기록을 남겼다. 2007년 스위스 신경과학자 올라프 블랑크는 가상현실 기법으로 이것을 분석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싣기도 했다. 초현실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우브(oobe:out of body experience)라 하는데, 유체는 대기를 여행하다가 은줄(생명선)이 몸과 연결되어 다시 들어와 앉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oobe는 엉뚱한 곳에서도 쓰인다. 상품을 개봉하는 순간, 즉 소비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개봉체험(out of box experience)이다. 이 순간의 느낌이 어떤가를 잘 연구하면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착안이 생길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ms oobe라는 표현을 특화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상품의 유체이탈이 아닌가. 인간과 물신이 접신하는 기묘한 포인트. 우리의 물욕들과 탐욕들의 실체는, 사물에 빙의된 영혼의 둔주곡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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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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