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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상처와 트라우마(59)

최종수정 2020.02.12 10:26 기사입력 2014.06.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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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상처란 살이 상한 자리다.저 찢어지고 베인
곳에서 퐁퐁퐁 돋아나는 핏방울을 보노라면
내가 얼마나 취약한 가죽부대 속의 존재인지
알겠다. 상처가 흔히 정신적인 무엇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동반하는 아픔이라는 현상 때문일 것이다.
피를 뿜어내는 순간 신경이 기립하면서
상처부위가 욱씬거리기 시작한다.아픔이란
몸 속에 있는 귀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려주는 긴박한 충고이다. 내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은 왜 이리 섬뜩한가.아마도 죽음에
대한 어떤 요약을 여기서 만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원주의 어느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시장통을 지나
먼길을 걸어야 하는 학교길에서 나는 친구녀석과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양철판을 파는 가게를 지나다가 나는 툭 튀어나온
함석쪼가리에 발을 찔렸다.따끔했지만 나는 발을 눈여겨보지는
않았다.그런 일들로 즐거운 장난을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에 도착한 뒤에
운동화를 벗어야 하는 순간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운동화 속은 거의 피범벅이었고
내 발등에는 그때까지도 피가 멈추지 않고
솟아오르고 있었다.양호선생님이 부랴부랴 달려왔고
나는 순간 한 발자욱도 더 걸을 수 없는
중환자가 되어 양호실로 업혀갔다.
상처는 제법 컸다.함석은 내 발등의 중간을
예리하게 지나가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살을 갈라놓았다.상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상처에서 전달되어오는 아픔보다 훨씬 더 크게
고통을 증폭시키는 느낌이었다.난 다리병신이
될 지 몰라.내 발은 이제 썩어갈 거야.이런
터무니없는 전망이 아픔을 더 키웠다.
나는 한발을 못쓰게 된 장애자처럼 절뚝거리며
뺨 위엔 줄지은 눈물을 매달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내 눈물에 놀라 성급한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상처란 어쩌면 살아있음의 호들갑같은 것이었다.
닥쳐온 작은 위험을 과장해서 큰 위험을 막고자 하는
생존의 치밀한 계획 안에 들어있는 것일지 모른다.
아야,아야,아야.나는 아프다.내 피를 보는 것은
언제나 내 속의 모든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한다.
온 신경이 긴장한다.아픔이란 상처가 자극하는
일부의 신경작용이 아니라,아프지 않은 신경까지
동원하여 괴로움을 증폭하는 기묘한 과장법이다.
뒤집어 보자면 아픔은 없다.아픔을 꼭 집어내자면
언제나 별 것 아니다.주사를 맞을 때를 생각해보라.
주사바늘이 살갗을 찢고 들어가 무언가를
쑤욱 주입시킬 때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순간적인 아픔이란 싱겁다.그저 작은 반응일 뿐이다.
그러나 주사바늘의 뾰족함,살갗의 연약함,그리고
생살 속에 파고든 쇠침이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쏟아내는
것을 생각하는 상상력이 이 단순한 아픔을
굉장한 시련으로 생각되게 만든다.

정신적인 외상(外傷)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프로이트는 그 스스로는 멋진 이론을 펼쳤는지 몰라도
뒷사람들에게 안그래도 호들갑스런 상처의 개념을
더 넓혀놓았다. 마음도 상처를 입는다.
마음이 피를 흘리고 뼈를 드러내며 째진 살의
주변이 자아내는 신경의 욱씬거림으로 괴롭다.
아픔이란 개념이 어쩌면 정신과 육체의 한복판에
있는 것일진대 거기다 정신의 아픔을 이렇게
은유로 덮씌워놓고 보니 아픔은 인간의 정신의
통대(痛帶)까지 짓누르는 불쾌한 손님인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혹은 우연히 마주친
고통의 기억,혹은 수치나 불쾌감.그런 것들이
정신의 자장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절대로 떠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된다고 말한다.프로이트여.그건
상처라고 불리워야 할 게 아니라 그저 기억의
한 장르가 아닐까? 마음도 상처를 입는다는 개념은
편리해보이긴 하지만 상처가 포함하고 있는
자기치유 능력을 눈여겨보지 않은 관점이
아닐까? 마음 속에 기억된 끔찍한 악몽도,다른
기억들이 공조하여 저절로 치유되도록 되어있단 말인가?
상처는 회복하려는 의지이다.아픔이란 생명의
원활한 활약이다.괴로움이야 말로 다시 멀쩡한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따뜻한 배려의 산물이 아닌가.
그런데 정신의 트라우마는 억눌린 기억들이
현재의 정신을 간섭하고 괴롭히는 현상이다.
그건 망각 따위로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의 외상을 찾아내고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직시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 무엇이다.그런 점에서
상처라는 몸의 이상(異常)을 정신이나 기억현상에 끌어들이는 것은
안성맞춤의 비유가 아닌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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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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