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리 모니크 로뱅의 신간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화학농업은 더욱 성행하게 됐고, 더욱 복잡한 이름의 화학물질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매일 먹는 채소와 과일, 농작물에 화학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게 됐다. 신간 '죽음의 식탁'은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라는 부제처럼 '침묵의 봄' 이후 우리 생활에 만연하게 된 독성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책은 더 나아가 독성화학물질이 일상에 넘쳐나게 된 데에는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과 규제 기관의 논리가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먼저 가장 심각한 것은 농작물 재배에 쓰이는 농약으로, 저자는 농약이 해충이 아닌 '인간'을 공격한다고 지적한다. "화학물질을 이용한 해충 퇴치는 겨냥하지 않은 생명체를 어쩔 수 없이 노출시키고, 여기에는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 농약이 땅에 닿으면서 지하수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번 뿌려진 농약의 절반 이상은 바람을 타고 살포지역 바깥으로 날아가, 대양의 물보라나 남극의 눈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을 정도다. 이로 인한 인간의 면역계 저하와 생태계 파괴는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또 제초제 라소를 사용하다가 급성 중독된 한 농부의 사연은 화학업계와 규제기관들이 암암리에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각종 식재료를 고를 때 일일섭취허용량 및 하루권장량 등을 고려하지만, 이 역시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일일섭취허용량이란 것은 소비자가 병에 걸리지 않고 매일 섭취할 수 있는 독극물의 최대량을 뜻하며, 이는 기업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기준일 뿐이다. 즉 이 화학물질들을 섭취했을 때 "리스크를 감수하는 쪽은 소비자이고 이익을 가져가는 쪽은 기업"인 것이다. 일일섭취허용량이 0.2mg인 농약을 예로 들어보자. 소비자 몸무게가 60kg이면 매일 12mg(60x0.2=12)의 농약을 매일, 그리고 평생 섭취해도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소리가 된다. 상당히 관료주의적인 개념인 이 일일섭취허용량은 화학물질이 체내 어떤 상호작용을 할 지, 어떻게 내분비계를 교란할 지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이 같은 화학물질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우선 전사회적으로 농약을 금지하고, 기업이 사회·환경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등 시스템의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기관의 밀폐 행정, 기막힌 '영업 비밀'로 공개되지 않는 데이터, '과학계의 소수파'나 '경고를 보내는 과학자'의 소중한 연구를 부정하는 일 따위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규제기관이 화학물질에 권리를 빌려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 화학물질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 권리의 주인은 인간이다."
(죽음의 식탁 /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만8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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