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의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김정일과 이웃으로 살면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최룡해는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국방위원회 위원과 군 인사를 좌우하는 총정치국장까지
당·정·군의 요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군을 장악한 최룡해는 권력투쟁의 속성상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권력은 분점하지 않으며 권력서열에는 2위가 없다는 동서고금의 진리 앞에 최룡해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룡해가 소년단 관련 행사에서 준공사를 한 점으로 볼 때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 임명 전에 맡은 당 근로단체 비서에 다시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룡해는 당 비서로 물러남에 따라 총정치국장 재임 시 겸직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의 직책에서도 물러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지도부에 관한 분석과 연구 등을 하는 인터넷 웹사이트 ‘북한지도부감시(North Korea Leadership Watch)’를 운영하는 미국인 마이클 매든은 2일 북한전문웹사이트 ‘38노스’에 기고한 '최룡해의 몰락'이라는 글에서 김정은이 최룡해의 군통제력에 불만을 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지난달 25일 681군부대 포사격 훈련을 본 뒤 "부대의 싸움 준비가 잘 되지 않았다”면서 "정치사업의 화력을 싸움준비 완성에 지향시켜야 한다”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 등으로 미뤄 최룡해의 군 통제력에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매든은 황병서는 근엄한 최룡해와 달리 온유하며 군내 인맥이 좋다고 평가했다.황병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으로서 인민군 간부인사를 담당했다.인사담당자였던 만큼 북한 군부의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다.
황병서는 김일성대학 재학시절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동급생으로 친분을 쌓았다.노동당 지도부 과장시절부터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으며 일찍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의 구축에 앞장섰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마원춘 당 중앙위 부부장 등 함께 장성택 숙청을 결정한 모임으로 관측되는 지난해 12월 '삼지연(三池淵)' 회합의 멤버였다.
황병서가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것은 그가 김정은 사람임을 입증하는 증거인 셈이다.통일부 당국자는 "황병서의 초고속 승진은 그가 김정은의 배려를 받는 최측근임을 나타낸다"면서 "김정은의 당의 군에 대한 지배체제가 더욱 강화됨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황병서는 지난달 2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결정으로 군 차수로 임명됐다. '차수'는 북한 군대 계급에서 '원수' 바로 아래다. 그는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비행사(조정사)대회 때 대장(별4개) 계급장을 달고 나온 지 11일 만에 차수를 달았고 다시 5일 만에 총정치국장에 올랐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다.
북한 군부를 속속들이 아는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임명으로 김정은이 노동당을 통해 인민군을 지배하는 領軍체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도 "황병서는 김정은이 인민군을 이끈다는 '영군 체제' 강화에 앞장설 인물"이라면서 "황병서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실무형 인물인 만큼 앞으로 일선 최하부대까지 통제와 검열이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병서 역시 최룡해와 같은 운명을 피하기는 어렵다.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가 얼마나 지혜롭게 처신해서 '2인자'로 평가받지 않느냐가 그의 정치생명의 장단(長短)을 판가름지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고 존엄에 근접하는 2인자를 내버려둘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의 알렉산더 만수로프 객원연구원(visiting scholar)은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총정치국장의 교체는 김정은 제1비서의 절대적 권력을 보여준다면서 그의 정권에서 누구도 2인자가 될 수 없고 황병서도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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