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자로 찍힌 직원들, 상사의 낮은 기대치에 맞는 성과내는 '필패 신드롬'
보통의 경우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반자 관계다. 하지만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 가장 많은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사이도 이들의 관계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 직장인 42%가 "소리를 지르거나 언어적인 학대가 빈번히 발생하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에서도 500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가량이 "괴롭힘을 당했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실질적인 손실은 구체적인 수치로도 입증됐다. 미국 조사에서는 "부당대우로 인해 직원들의 24%가 업무의 질과 양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고, 28%가 괴롭힘을 피하는 데 업무 시간을 허비했다. 52%는 미해결된 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업무 시간을 보냈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회사에서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 레퍼토리를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의 장 프랑수아 만초니 교수는 '필패 신드롬(Set-up-to Fail syndrome)'이라고 정의했다. "성과가 낮은 직원으로 낙인찍힌 직원들은 상사의 낮은 기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게끔 유도되고, 결국에는 개인도 조직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역학구도"가 된다는 이론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적인 평판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낙인효과'의 직장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만초니 교수는 지난 15년 동안 현장에 있는 리더 3000명을 대상으로 무수히 많은 '필패 신드롬'을 전해 듣게 됐다.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 신간 '확신의 덫'이다. 이 책의 부제 '유능한 사람이 왜 무능한 사람이 되는가'는 오늘날 많은 조직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책에서 저자는 관리자, 팀장, 리더, 혹은 단 한 명의 부하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확신의 덫'을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불확실하고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 관리자들은 의사결정을 빠르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꼬리표 붙이기'를 즐겨 이용한다. 저자가 만난 리더들은 사람을 평가하는데 10분, 혹은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처럼 "꼬리표 붙이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능한 직원이 무능한 직원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 '유능한 직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직원에게도 이 상황은 환영할만하지 않다. "상사로부터 지나친 신뢰를 받아 다른 직원의 일까지 떠맡아야 하지만 지원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패 신드롬'이 상사-부하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자식, 교사-학생, 코치-선수 등 다양한 인간 관계에서 '확신의 덫'에 빠진 사람들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내가 선수의 능력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는 사실을 선수가 확신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선수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미국 남가주대학의 미식축구 수석 코치 존 로빈슨의 말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확신의 덫 / 장 프랑수아 만초니, 장 루이 바르수 지음 / 이아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1만8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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