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입시는 부모力에 좌우..경제능력보다 문화자본이 중요
"애들이 퀄리티가 안 따라줘서, 제가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한, 연·고대 수준에 못 미친다면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시켰을 거예요. 대학을 안 보냈을 겁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 공부 중상 정도로 하고 그냥 어중간하게 해봐야 저처럼 월급쟁이 아니면 구멍가게밖에 안된다고요."(은행지점장으로 재직 중이고 고3 자녀를 둔 한 40대 남성)
자녀의 대학 진학 실패 가능성에 대해 걱정의 차원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됐던 저자는 이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공부 말고 구원받을 길이 없으니 목숨 걸고 해보라"고 수험생들을 협박하던 국내 최대 사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대표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고백한 점도 저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 손 대표는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너무나 튼튼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있다"며 "공부 잘한다고, 명문대 나온다고 중산층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가긴 쉽지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저자는 결국 24집의 중산층 입시 가족을 2005년부터 추적해가며 인터뷰를 펼쳤다. 대상 가족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전문직에 종사하고, 거주지는 교육열이 높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 부근이다. 저자가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부모들이 과거와 같이 자녀들을 통해 '무대포식 대리욕망'을 꿈꾸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삶의 질을 돌아보고 싶어 하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자녀에 대한 소유욕을 의심하고 조율하면서 '고뇌하는 욕망'을 향해 진화하고" 있었다. 책의 키워드는 크게 부모 정체성, 중산층, 인서울대학(서울권 대학) 등의 세 개의 열쇠어로 구성돼있다.
어느 가족 하나 소위 '쿨'하게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이라는 표현 대신 그것을 '모호한 열정'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인서울대학 진학'이라는 바람은 거꾸로 (중산층을 상징하는 수식어인) 서울 바깥으로 배제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에둘러서 말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한 열정의 뿌리에는 중산층의 모호한 위치와 함께 '중상(上)층으로의' 계급을 상승하려는 욕망이라는 사회경제적 뿌리가 놓여 있다고 해부한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욕망은 '문화자본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부모가 돈이 있으면 자녀교육에 더 투자한다'라는 말은 '부모는 자신의 경제자본을 자녀를 위한 문화자본으로 전환시킨다'라고 달리 표현할 수 있으며, '대졸학력의 부모가 고3 자녀의 수학공부를 도와준다'는 말은 '부모는 자신의 문화자본을 자녀의 문화자본 획득을 위해 투입한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재력, 정보력, 학력을 벗어나 우리 시대 '부모들'에게 '부모력(力)'을 갖출 것을 당부한다. 부모력은 부모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이자 자녀에 대한 관심을 실천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부모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문화자본을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 '타오르는 땡볕이 아니라 부드러운 한 줄기 햇살과 같은 사랑' 역시 부모력의 또 다른 정의다.
(입시가족 / 김현주 / 새물결 / 1만4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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