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 몰입한 모습을 보면서 장르를 막론하고 한 분야에 빠진 사람이 부러워졌다. 그런 사람은 나처럼 종종 휴일을 뭘 하며 보낼지 막막해하지 않을 테니까.
스웨덴 노인 알란 칼손은 100회 생일에 충동적으로 양로원을 탈출한다. 평생 세계의 격변을 현장에서 겪은 그로서는 시골 양로원을 인생 최후의 장소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게다.
알란은 다시 세상에 뛰어들기 직전, 그러니까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 갱단 멤버 '볼트'와 마주친다. '네버어게인' 조직원 볼트는 알란에게 자기가 큰일을 보는 동안 잠시 제 트렁크를 지켜달라고 명령하는 투로 말한다. 알란의 충동이 다시 꿈틀댄다. 그는 곧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 기사 도움을 받아 트렁크를 짐칸에 싣고.
책은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하지만 난 여기서 책을 딱 덮었다. 그리곤 도서관 창구에 반납했다. 재미가 없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 책장을 슥슥 넘기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큭큭거리게 되는 책이었다. 알란 노인의 모험담은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음 일요일, 혹은 그 다음 일요일을 위해서.
이날 난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인 버킷 리스트를 정해두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날 때 마저 할 재미난 일을 여럿 시작해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아, 알란 노인의 모험담은 얼마 뒤에 가서 마저 읽었다. 나머지 절반은 전반부에 못 미쳤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