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스'와 진짜 잡스 같은 점 다른 점
잡스가 죽던 날 아시아경제신문은 1면 전면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면에 그의 확신에 찬 미소 사진을 실었고 헤드라인을 '불멸'이라고 달았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 불멸을 말한 것은 패러독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창의'의 힘이었다. 그 창의는 인간의 원초적인 미감과 스타일과 편리함이 작고 단순하게 결집되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발산하는 것이었다. 얇고 납작하며 모서리가 둥근 작은 물건은 이전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아냈지만, 단순하며 직관적이며 새로웠다.
'잡스'라는 영화를 보면, 감독은 잡스를 비사회적인 기인(奇人)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료들과 충돌하고 양보 없이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것을 표절한 경쟁사에 대해 증오를 불태우는 다혈질적인 천재. 그런 일면이 있었지만 그게 그를 대표하는 특징일까. 하나의 삶을 그려내는 스토리텔링이란 한 인간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거나 부실한 이해이기 쉽다는 것을 여기서도 본다. 영화에는 잡스가 자신의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는 장면이 두 번쯤 나온다.
그런데 장애인용 주차 장소에 서슴없이 파킹한다. 주차장이 텅 비었는데도 굳이 장애인 공간에 차를 세우는 까닭은 뭘까? 스스로를 장애인이라 생각한 걸까? 이 장면은 그의 전기에 등장하는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사장이었던 잡스는 애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러 갔다가 빈자리가 전혀 없어서 빙빙 돌다가 마침 비어 있는 장애인용 주차칸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주차하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주차 관리원의 농담을 보라. 한국에서 기업 회장의 차에다 그런 유머센스의 스티커를 붙여놓을 수 있는 배짱을 지닌 주차요원이 있을까. 권위나 특권의 존재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빼어난 역할자인 잡스. 하지만 영화는 그걸 담지는 못한 듯하다.
기존의 것을 되풀이하는 디자이너에게 '이 쓰레기를 날마다 만들어내면서 아직까지 여기 있는 이유는 뭔가'라고 묻던, 잡스의 삼엄한 질문은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꽂히는 말이다. 그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지 않았다. 차의 흰색과 번호판의 옅은 살색, 그리고 그 글자색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의 미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번호판을 달지 않을 수 있었을까.
혹자는 잡스가 어떤 이유로 특권을 누렸을 거라는 짐작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현지에 살았던 어떤 사람이 이런 해답을 내놨다. "자동차를 6개월마다 새 차로 바꿔 등록하면 된다." 주 행정부의 신차에 대해 6개월간 번호판을 달지 않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성가신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 성격이 애플의 제품들에 숨어들어가 있는 셈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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