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났으니 말이지 알렉산더가 누군가. 이 젊은 정복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모험가였다. 아무리 힘들여 정복한 도시도 단 이틀 이상을 머물지 않고 다시 군대를 정비하여 동으로, 동으로 나아갔다. 오로지 궁금증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렉산더, 알렉산더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같은 정복자라도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이나 히틀러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서른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죽은 이 젊은 정복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 충돌을 경험하게 한 문화 메신저였던 셈이다.알렉산더에 대해 생각하던 하림은 다시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한 생각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흔히 부지런함을 가르치면 좋은 철학자요, 게으름을 가르치면 나쁜 철학자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대체로 부지런과 열심히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 열심히 사는 사회일수록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그만큼 짱구 굴릴 일이 많고, 그만큼 나쁜 놈들이 많아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아라! 뼈 빠지게 일하라! 그게 좋은 거다. 그게 인생의 보람이요, 가치다! 게으른 놈은 노숙자가 되고, 죽어서도 지옥에 갈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세상은 양분되었다. 부자와 가난뱅이. 부자는 부지런한 자의 결과요, 가난뱅이는 게으름뱅이의 결과다. 부자는 존경을 받고, 가난뱅이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게 지금 세상이 가르치는 윤리다.
과연 그럴까? 하림은 누워서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그렇게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대로 하고 있었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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