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때로는 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살아라', 는 말 반대편에는 '대충 살아라', 는 말이 있다. 부지런함이 자본주의의 미덕이라면 게으름은 반자본주의자들의 미덕이다. 일찍이 반자본주의의 대명사였던 히피들에겐 부지런함은 없었다. 그들의 길게 기른 머리칼과 손톱은 게으름의 극단적 표현이다. 70년대를 풍미했던 히피들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생겨났다. 대마초에 쩔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그들은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게으르게 사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대충 살아라' 가 그들의 모토였던 셈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떤가. 그 역시 아테네 거리에서 언제나 누군가를 붙잡고 꼬치꼬치 따지며 '그게 뭔가?' 하고 묻고 다녔다고 한다. 칸트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시계처럼 산책을 하고, 사색을 하고, 책을 썼다. 빈틈 없는 생활이었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비주류의 '어슬렁학파' 철학자들이 있다. 말하자면 게으름을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철학자들이다. 노자가 그랬고, 장자가 그랬고, 디오게네스가 그랬다. 노자는 열심히 악을 쓰며 사는 인간들이야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작자들이라 했고, 장자는 노는 게 남는 장사라는 걸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전해 주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알렉산더였기에 망정이지 좀팽이 권력자를 만났더라면 디오게네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십중 십은 모가지가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다. 손톱만한 권력이라도 생기면 휘둘러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대한민국의 좀팽이 권력자들과는 판이 다르다. 대기업 상무랍시고, 그것도 권력이라고 비즈니스석에 앉아 라면 끓여와라, 맵다 짭다, 온갖 까탈을 부리며 스튜디어스에게 행패를 부리는 친구나, 대통령 따라 나가서 한다는 짓이 자기가 마치 황제나 되는 양 거들먹거리며 여자들 희롱이나 하는 그런 좀팽이 권력자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훈련되지 못한 권력은 천한 행동을 낳기 마련이다. 아아, 우리 조국, 노래하던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은 지금 좀팽이 권력자, 벼락 출세자, 벼락 부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입으로는 정의구현을 외치던 대통령이 수천억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도 단 한 푼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세상이요, 입으로는 애국 안보를 외치면서 개나 소나 좀 있다 하면 제 자식 군대 빼돌리고, 세금 내지 않겠다고 해외에 페이퍼 유령회사를 만들어 재산을 빼돌리는 세상이니 그런 좀팽이 권력자에게 걸렸다면 아무리 디오게네스라 한들 목숨 부지하기가 어려웠을 터이다. 하긴 그런 좀팽이 권력자가 한 수 배우겠다고 거지 철학자를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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