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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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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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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 바람으로 나선 게 서울역 간다더니, 파자마 입은 줄도 모르고, 비분강개 일장연설을 토한 동철은 그제야 그곳이 비곗덩어리 까맣게 타들어가는 골목 안 흑돼지집이라는 사실과 둥근 불판을 사이에 놓고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중이란 게 겨우 영양가 없는 윤여사와 하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열적은 표정을 지었다.
“암튼 그렇다는 이야기야. 내 말은.”
그래서 이렇게 대충 마무리를 지은 다음,
“울 아버지께서 평소에 내가 흥분 잘 하는 걸 아시곤 꼭 하나 명심하라시면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있는데, 내가 또 그것을 깜박했군.”
하고 싱겁게 웃었다.
“그게 뭔데요, 수반님?”
윤여사가 제법 애교스럽게 받아주었다.
“별 거 아니어요. 남 똥 싸는데 용쓰지 말라는 말씀.”
그 말에 윤여사는 또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고 까르르르, 소리 내어 웃었고, 하림 역시 빙긋이 미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역시 그 아들에 그 아버지로군요.”
“뭐라구?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은 들어봤지만 그 아들에 그 아버지는 처음인걸.”
윤여사의 감탄에 동철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나도 적어놓아야겠어요. 남 똥 싸는데 용쓰지 말라.”
윤여사는 그렇게 말해놓고, 술잔을 들었다.
“자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건배 한번 해요! 짜안~ 남 똥 싸는데 용쓰지 말기!”
그리곤 동철의 잔과 하림의 잔을 차례로 부딪쳤다. 비분강개했던 분위기가 일순 처음의 낄낄거리던 망명정부 분위기로 다시 돌아왔다.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선 열 올리는 놈만 바보 되기 십상이었다.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나눌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열을 올리고나면 괜히 자기만 초라해지게 마련이었다. 우리의 ‘똥철’이 아니면 누가 그런 주제로 열을 올릴 것인가. 말인즉슨 맞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개똥철학자 동철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꺽정이나 길산이 같은 의적이 되었을 것이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더라면 안중근이나 윤봉길 같은 의사가 되었고도 남을 친구였다. 기껏 싸이의 말춤이나 추어대는 친구들과는 달랐다. 기개가 있었고, 의기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나 서른 중반 나이에 겨우 국회의원 영감 대신 자서전이나 써주거나, 때때로 주례사나 축사 따위를 대신 써주고 몇 푼 받아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 비정규직도 아닌 촉탁 신세. 입으로 망명정부나 떠드는, 자기나 다름없는 개털 신세였다.
하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똥철의 망명정부보다 구세대들에게, 그들의 엄숙한 애국적 얼굴을 향해, 더 한방 먹이는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것에는 세상에 대한 남모르는 야유와 감자먹임이 들어있었다. 하림은 특히 싸이가 채찍을 휘두르는 포즈로, “갈 데까지 가보자~!”하는 구절이 젤 맘에 들었다. 적어도 그 부분에선 속이 다 후련해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싸이도 혼자 자신만의 망명정부 차려놓고 사는 친구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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