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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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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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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덴 자주 오시는가보죠?”
나란히 걸어가며 윤여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뇨. 지금까지 합해서 모두 세 번이나 될까.”
“난 첨인데……. 사실 난 이런 낡아빠진 고물딱지들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리고나서 하림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실은 우리 집이 어릴 때 아버지가 고물장사를 했거든요. 호호호.”
“아? 예에.”
하림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산더미 같이 쌓인 고물들 틈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하곤 했는데……. 여기 보세요.”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코트를 들추더니 이어 치마까지 들추고 허연 정강이께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길죽하고 허연 흉터 자국이 나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뭘 하나 하고 쳐다보았다.
“고물들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여기를 딱 끼었지 뭐예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림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만난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았는데, 윤여사는 마치 오래 사귄 사람 대하듯 잘도 떠들어대었다. 그래도 왠지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요즘처럼 우중충한 시절에 이렇게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철없는 늙은 여자를 만난 것만 해도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경은 너무 어두웠고, 그래서 보기만 해도 너무 힘이 들었다. 윤여사는 거기완 아주 딴판이었다. 혜경이 안개꽃 종류라면 윤여사는 한여름의 햇살 아래 붉게 핀 강한 장미과 종류랄까. 하여간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떤 영화에서던가? 사람들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묻곤 했다.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온 사람이오?”
“나는 혹성 KC335에서 왔소. 당신은....?”
“난 안드로메다 은하 혹성 BDF 45에서 왔소.”
그런 식이었다.
아마도 지금 이 비좁은 대한민국이란 땅에도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마구 뒤섞인 채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가 너무나 답답해하고, 갑갑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느 별에서 왔건, 나쁜 놈은 나쁜 놈이고, 좋은 놈이다. 어떤 놈들은 지배를 하고 어떤 놈들은 혼자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한다. 이 작고 작은 별의 이 작고 작은 땅에서…….
그런 놈들은 분명히 아주 사악한 별에서 떨어진 놈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림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세똥철’이 먼저 도착하여 손으로 빨리 오라는 시늉을 보내고 있었다. ‘제주도 흑돼지 숯불 갈비집’은 시장 안쪽에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허름한 홀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연기와 뒤섞여 탁하게 코를 막고 섰다. 겨우 비집고 들어가 둥근 불판 하나를 차지하고 동철이 먼저 앉고, 그 옆으로 하림과 윤여사가 앉았다. 윤여사가 코트를 벗자 동철이 얼른 받아서 냄새가 배이지 않게 마련된 상자에 담아서 한쪽에 얌전하게 갖다 모셔두었다. 하는 품이 평소에도 많이 해 본 솜씨 같았다.
“아줌마 여기 일단 먼저 갈비 삼인분하고, 소주 한 병 줘봐요!”
동철이 물어보지도 않게 호기롭게 시켰다. 하긴 물어보고 할 것도 없었다. 그것 아니면 그거였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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