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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손님? 사람 구경한지 오래됐어" 가락시장 상인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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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가락시장에서 팔리지 못한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지난 4일 가락시장에서 팔리지 못한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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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겉에 살짝 얼은 건 난로 피우면 녹습니다. 못 믿겠으면 제 휴대전화 번호 드릴게요. 전화하세요. 배춧값이 얼마나 올랐는데요. 이 정도 품질에 이 단가 맞추기 힘들어요."

지난 4일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 인적이 드문 가락시장 배추 경매장 근처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논쟁의 중심은 배추. 추운 날씨 탓에 배추 속이 언 것이 아니냐는 손님의 말에 상인은 물건에 이상이 있으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이 날 장사가 안 되자 상인은 한 망에 1만5000원짜리 제품을 1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손님은 "추운데 매번 나와 있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자 측은한 마음에 배추를 사게 됐는데 속이 얼어 못 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영하의 날씨에 녹지 않고 쌓인 눈만큼 가락시장 시장 상인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시장 안에서 있는 배추, 무 경매장에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모자를 눌러 상인들이 난로를 피우며 연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김모씨(64)는 "아침 6시 반부터 나와서 팔려고 기다렸는데 너무 안 팔려서 이제 정리하고 들어가려고 한다"며 "날씨도 춥고 오늘 들어온 물건이 안 좋다보니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매서운 칼바람에 그의 코끝은 얼어붙었고, 찬바람을 이기지 못한 눈가엔 살짝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 앞에 쌓인 배추와 무 등은 지난 3일 밤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있던 경매에서 팔지 못한 것들이다. 도매상이 중간 도매상에게 넘기지 못하고 남은 물건들이라고 했다.
산처럼 쌓여 있는 배추 아래서 난롯불 주위에 한 둘 모여 있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두꺼운 옷차림의 상인들은 남은 배추를 팔기 위해 지금껏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고령에서 올라와 십여년 째 장사를 한다는 한 상인은 난롯불에 손을 쬐며 "자꾸 춥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더 안 나온다"며 "소매상들이 와서 앓는 소리 하는데 우리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양배추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최근 채소값이 폭등한 이유는 물량이 없기 때문"이라며 "작년 농사 해놓은 게 다 망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앞으로 두 달간 제주에서 재배하는 채소들만 시장에 들어오는데 얼마나 품질이 좋을지 모르겠다"며 "가격이 오를지도 모르니 지금 사놓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손님이 없다, 안 팔린다"고 덧붙였다.

시장 안에서 과일을 파는 곳도 마찬가지. 채소를 판매하는 상인들보다는 덜 어두운 표정이었으나 추운 날씨 탓에 손님들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락시장에서 소매로 과일을 파는 이모씨(48)는 "예전 같았으면 금요일이면 영업하는 사람들이 몇 십만원 어치 물건을 사서 갔는데 요즘에는 몇 만원치만 사 간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영업자들이 재료로 쓰는 과일의 수량을 줄이거나 제철 과일만 간소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날씨가 조금 풀리면서 가락시장에서 소매상인들이 모인 곳은 모처럼만에 활기를 띄었다. 장바구니 등을 들고 장을 보는 사람들로 간만에 시장은 북적였다.

문정동에 사는 김지현(38)씨는 "마트보다는 시장에 싸고 좋은 물건이 더 많은 것 같다"며 "날씨가 풀리면 시장에 자주 올 생각"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15년째 가락시장에서 고추와 버섯 등을 판매하는 한 60대 상인은 "그래도 어제에 비해 날이 풀려서 오늘이 장사가 좀 나은 편"이라며 "눈 오고 할 때는 물건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트에서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 가기 때문에 가락시장이 제일 싸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관악구에 위치한 인헌시장에도 조금이라도 더 싼 값에 채소를 사려는 사람들이 시장을 방문했다. 시장에선 배추 한 포기가 5000~6000원에 팔린다. 주말이 지나면 가격이 더 올라갈 전망이다. 인헌시장 보성상회 주인은 "오늘 제품을 갖고 왔으면 가격이 더 올랐을 것"이라며 "상추나 깻잎 등 엽채류 도매가격이 올라 대부분 가격을 좀 더 올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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