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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메신저]'옷'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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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옷'이라는 글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형상을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맨 위의 'ㅇ'은 머리, 'ㅗ'는 목과 팔, 그리고 'ㅅ'의 위쪽을 약간 길게 그리면 몸과 두 다리가 된다.

우리 글이 상형문자나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한글의 우수성' 운운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세계 어느 종족의 문자가 '옷'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의식주(衣食住)라 한다. '식·의·주'나 '주·식·의'라 하지 않는다. 조상들이 그만큼 '의'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류는 옷을 왜 입기 시작했을까. 이론이 분분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서, 장식을 목적으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채로 오늘날까지 의류문화는 발전해 왔다. 의류학자인 레스터(Lester)와 커(Kerr)는 인류 최초의 옷이 핏자국이었다고 주장한다.
원시시대 인류의 조상들은 적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싸움의 흔적은 핏자국이었다는 것이다. 핏자국은 힘과 용기의 상징이고 증거였다.

핏자국이 요란할수록 싸움이 치열했음을 나타냈고 강자(强者)임을 웅변해줬다.
오늘날이야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다양하다. 어떤 직업인가, 몇 평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는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 돈이 얼마나 많은가 등등….

그러나 원시사회에서의 부(富)란 육체적인 힘이 전부였으므로 핏자국이란 그 세력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는 것이다.

피범벅이 된 채 의기양양하게 살아 돌아온 승자는 그들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승자는 핏자국을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하고 싶어 했다.

싸우지 않고도 핏자국을 대신할 수 있는 보디페인팅도 등장했다.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색의 흙을 기름에 개어 용기 있고 무섭게 보이도록 바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영구적이지 못했다. 적과의 싸움에서 얻은 심한 상처와 흉터는 자랑거리였다.

흉터가 험상궂을수록 존경심은 더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상처를 내고 흉터를 만들기도 하였다. 문신도 등장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연히 고통이 뒤따랐다.

지혜가 발달해가며 사람들은 고통을 덜어내는 방안을 꾸준히 찾았다. 트로피를 몸에 지니기 시작하였다. 트로피는 승자만이 차지할 수 있었다. 예컨대 맹수의 발톱, 이빨, 전리품으로 차지한 다른 종족의 보물 등을 몸에 걸었다. 식물의 줄기나 동물의 가죽 같은 것에 매달아 목이나 허리에 둘렀다.

목에 감은 것이 상의의 시작이 되고, 허리에 감은 것이 하의의 시작이 됐다. 이게 학자들의 이론이다.

오늘날 옷은 제2의 피부라고도 한다. 피부는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단열(insulation)과 체온 조절, 감각 기능, 그리고 비타민D의 합성 등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동시에 인체를 최종적으로 형성하고 완성한다. 그렇다. '옷'은 인체를 보호할 뿐 아니라 사람의 외형을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받는 존재로 완성하기 위해 행했던 여러 가지 뼈아픈 노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아직도 피처럼 붉은 액체로 치장을 하는가 하면, 문명사회에서도 보디페인팅은 화장으로, 흉터는 쌍꺼풀 같은 성형으로, 그리고 문신은 조폭처럼 육체적인 힘의 과시가 필요한 사람들은 무섭게,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아름답게 적극 활용되고 있다. 문화의 발달과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표현 방법과 수단이 달라졌을 뿐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둘러싸고' 있어야 하는 '옷'을 통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시 옷은 사람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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