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저 자살율 그리스..경제 위기로 자살 공화국 오명
19일 독일의 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국가 부도 직면에 놓인 그리스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낮은 자살율을 기록했던 그리스가 경제 위기 이후 ‘자살 공화국’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자살 시도자들은 중산층이었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치적인 자살 시도가 많았다고 슈피겔은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아테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산티그마 광장에서 권총 자살한 드미트리스 크리스토울라스를 꼽을 수 있다. 77세의 약사인 그는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연금이 줄자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35년동안 연금을 내왔지만 정부는 이제와 연금으로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휴지통의 음식물을 찾아 나서기 전에 위엄 있는 최후를 맞는 것 밖에 길이 없다”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드미트리스의 딸 애미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아버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애미에 따르면 숨진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해왔다. 드미트리스는 권총 자살 직전인 4월4일 오전 8시31분, 딸 애미에게 “이제 모두 끝났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애미는 그의 아버지에게 연락했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의 아파트로 향했다. 이동 중 라디오를 통해 산티그마 광장의 권총자살 뉴스를 접하는 순간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모방 자살을 더 우려하고 있다. 아테네의 심리학자인 니키포로스 안젤로폴로스에 따르면 1920년대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자살이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 드미트리스의 자살 직후 산티그마 광장 인근에서 90세 노부인이 지붕에서 떨어져 숨졌다. 이 노부인을 지붕 아래로 밀어낸 사람은 그녀의 아들로, 그 역시 투신 자살했다. 아들 역시 “나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라며 “음식을 살 돈이 한 푼도 없을 땐 무엇을 해야하느냐”는 유서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정부는 몇 주전 대폭의 예산 삭감 속에서도 자살 방지를 위한 ‘핫라인’을 설치했다. 하지만 최근 61세의 전직 항해사가 직장을 잃은 것을 비관해 집 근처 공원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지는 등 자살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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