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한미연합사령부 드래곤힐 2층서 고인의 자녀들에게 전달…한국인으론 최고·최고 훈격
김 기관사는 전시에 포로가 된 미 육군 24사단장 윌리엄 F. 딘(1899~1981년) 소장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
민간인신분으로 살아올 가망이 적은 작전에 자원한 고인이 전쟁 중의 민·군 협조와 다른 한·미 합동작전에 공을 세웠다는 게 미 국방성 평가다.
‘특별공로훈장’ 추서는 월터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2008년 6월~2011년 7월)이 추진, 이날 고인에게 미 정부를 대신해 감사장을 전했다. 서훈식장엔 정창영 사장 등 코레일 관계자 30명과 유족, 한미양국 주요 군 지휘관이 참석했다.
‘특별민간봉사상’과 ‘감사장’은 코레일의 끈질긴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코레일은 지난해 6월부터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고인의 공훈을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국방부도 지난해부터 미국을 찾아 공적 가치와 전사경위를 설명하는 등 힘을 보탰다.
김 기관사는 1923년 논산서 태어나 22세 때인 1944년 철도국에 들어가 대전기관차사무소 기관사로 일하던 1950년 7월19일 대전전투 중 연락이 끊긴 딘 소장 구출작전에 참가했다.
딘 소장은 6·25전쟁 후 처음 한국에 상륙했던 미24사단 사단장으로 3년간 평양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딘 소장 구출특공대가 긴급조직 됐으나 옥천지역까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어 귀환가능성이 희박했다.
이런 가운데 김 기관사는 작전에 자원, 특공대가 갈 기관차를 운전했고 북한군 매복을 뚫고 돌아오던 중 대전 판암동 근처에서 북한군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때 고인은 28세로 부인(이규선 씨)와 사이에 딸 제권 씨(당시 4세), 아들 제근 씨(당시 2세) 등 1남1녀를 뒀다. 이들은 나중에 아버지 뒤를 이어 모두 철도원이 됐다. 제권씨 아들인 외손자 홍성표 씨도 코레일에서 현직 부기관사로 근무 중으로 고인이 못 다한 철도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고인에 대한 후배기관사들 추모 열기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뜨겁다. 김 기관사가 총격을 받고 숨진 곳에 철도인들이 1962년 순직비를 세웠다.
이곳을 지나는 기관차는 짧은 경적을 울려 고인의 넋에 존경을 나타내는 게 관행으로 내려온다. 현충일이 다가오는 해마다 6월엔 순직비를 찾아 기념행사도 갖고 있다.
경기도 의왕 철도박물관엔 김 기관사의 유품이, 국립대전현충원엔 김 기관사가 운전했던 미카 3-129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이번 미 정부 훈장추서로 고인은 역사적 자취를 확실히 남길 수 있게 됐다.
서훈식에 참석한 정창영 코레일 사장은 “고인의 용기를 흠모하고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철도인들의 오랜 염원이 이뤄진 것 같아 기쁘다”며 “더 나아가 한미동맹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고 철도산업의 안보적 중요성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왕성상 기자 wss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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