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에게 A4 8장 이메일..고질적 기업병을 꼬집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23일 장문의 이메일을 통해 계열사 만도 임직원에게 가감없는 일침을 가했다.
정 회장은 작심한 듯 이메일에서 품질, 기술개발, 원가경쟁력, 영업 등 각 부문별로 조목조목 문제점을 제기했다. 일부 잘못된 관행을 '만도병(病)'으로까지 지칭하기도 했다. 신년사와 창립기념사 등에서 "잘하자"라는 취지의 통상적인 언급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은 "'언젠가' 한 번은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펜을 들거나 얘기를 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적절한 경험치'와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이상의 신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적절한 미래의 얘깃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 때가 됐다"고 서두에 밝히기도 했다.
특히 품질에 대해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는 말로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품질문제로 인해 고객과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면서 "자동차부품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보안부품이기 때문에 품질문제는 회사 경쟁력의 차원을 넘어서 회사 존립을 좌우하는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가경쟁력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시장가격이라 한다면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인 만큼, 결국 우리가 그 가격 수준을 감내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가도 거론했다. 정 회장은 "현재 만도 주가는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의 주가 수준치고는 많이 부족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정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길목'에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위기에도 완성차 산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자동차부품 산업 역시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잘 나갈 때 위기를 의식하지 않으면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정 회장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했다. "강력한 경쟁자들과 싸워서 그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 말고는 중장기적인 생존방법이 없다"면서 "글로벌 확대 전략과 고객 다변화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마치 갓 걸음마를 배운 어린 아이가 100m 경주에 나서는 것 같아 편치 않은 심정이지만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사내에 만연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인 '만도병'을 근절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회장은 관행에 집착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하는 점, 전사적인 협조 관계를 방해하는 본부 이기주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점, 원가 및 위기의식의 부재, 지시 일변도의 일방적인 상하관계, 취약한 마케팅 능력 등을 '만도병'으로 규정했다.
정 회장은 담화문 마지막에 스스로도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만도가 최고의 소통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할 뿐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잘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복지 등을 더욱 배려하겠다"는 말로 마무리지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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