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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 강회진 '찬란한 한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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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렁 치러 나갔던 늙은 아버지 돌아와
요요한 초록의 논물 베고 대청마루에 드러눕고
고추밭에 젓순 따러 나갔던 어머니
돌아와 그 곁에 호미처럼 둥글게 드러눕자
기다렸다는 듯 여린 살구나무에 빗낱 떨어진다
[아, 저詩] 강회진 '찬란한 한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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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회진
'찬란한 한때' 중에서

■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평화로워지는 아버지, 어머니다. 논물 베고 누운 남자와 호미처럼 누운 여자. 고단하여 허기진 바깥사람을 위해 고추 젓순을 무쳐 점심으로 내놓는 안사람. 함께 나란히 눕지 않고 반듯이 누운 남편 옆에서 그를 향해 몸을 둥글게 쪼그려 눕는 아내. 이런 말없는 순종과 은근한 믿음이 대청마루를 고즈넉하게 한다. 이런 휴식의 시간을 맞춰 하늘이 내려주는 단비. 빗소리가 잠든 두 사람의 귀를 적신다. 어디에 떨어지는가, 살구나무 잎사귀 위에 떨어진다. 중국 시인 섭소옹이 쓴 '유원에서 그를 만나지 못하고'라는 시가 생각난다. 벗에게 놀러갔으나 마침 출타 중이라 문이 잠겼다. 섭섭한 마음에 담장을 올려다 보니, 살구꽃 한 가지가 놀다 가라는 듯 담을 타고 넘어와 환한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향기롭다. 살구나무 또한 사람처럼 유정(有情)하지 않은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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