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권한나의 캐디편지] 눈쌓인 코스의 주인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권한나의 캐디편지] 눈쌓인 코스의 주인은?
AD
원본보기 아이콘

우리 골프장이 최근 사흘간 휴장했습니다.

폭설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아침 일찍 출근을 합니다. 찾아오는 고객도 없는데 말이죠. 우리 모두 출근해서 하는 일은 그저 눈밭에서 노는 일입니다. 추운데 눈밭에서 노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눈이 내린 다음날은 전 직원이 출근해 눈밭을 뒹굽니다. 물론 노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저와 몇몇 친구들은 툴툴대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눈밭에 나와 논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더라고요.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표창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다들 하나같이 넉가래와 삽을 들고 코스에 나가 눈과의 씨름을 합니다.

밤새 눈이 오면 다음날 누구 하나 빠짐없이 회사로 모여드는 우리들. 모르는 사람들은 "왜?"라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그 답은 휴장이 끝나고 우리 골프장을 방문하는 고객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쌓인 눈은 사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습니다. 수많은 기계들과 사람들의 넉가래질, 삽질,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세상은 온통 하얗습니다.

골프장에 근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눈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것입니다. 차라리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아무 보수도 없이 눈을 치우는 일은 당연히 불만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아무도 없는 눈 쌓인 골프장으로 이끄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 골프장의 '주인'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눈을 치우고 있는 이 자리에서 누군가는 내일 티를 꽂고 공을 얹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밭에 조금씩 드러난 페어웨이에서 단 한 번이라도 멋진 티 샷을 날리고 싶은 바람이 끝없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들은 이미 이 골프장의 주인입니다. 다른 골프장에서도 우리들과 똑같이 눈을 치우는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닙니다. 골프장의 주인들만이 웃음꽃을 피우며 눈 쌓인 코스를 치우고 다듬을 수가 있습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요구안 의결…尹, 거부권 가닥 김호중 "거짓이 더 큰 거짓 낳아…수일 내 자진 출석" 심경고백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국내이슈

  • "눈물 참기 어려웠어요"…세계 첫 3D프린팅 드레스 입은 신부 이란당국 “대통령 사망 확인”…중동 긴장 고조될 듯(종합)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해외이슈

  • [포토] 중견기업 일자리박람회 [포토] 검찰 출두하는 날 추가 고발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포토PICK

  • 기아 EV6, 獨 비교평가서 폭스바겐 ID.5 제쳤다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이란 대통령 사망에 '이란 핵합의' 재추진 안갯속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