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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박재완 경제, 용기와 꼼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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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 어려운 현실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라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용기 있는 장관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안 없이 무책과 무능을 은폐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꼼수'에 다름 아니다.

지난주 재정부가 내놓은 '2012년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전에 볼 수 없던 묘한 반응이 나왔다. 초점은 정책 운용의 전제인 '성장률 3.7%'다. 재정부는 '세계경제 부진으로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어 올해보다 낮은 성장이 예상된다'고 똑 부러지게 설명했다. 세계경제가 어려운데 우리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고 당당하게 선언한 것이다.
3.7%가 주는 의미는 자못 심장하다. 올해 성장률 전망(3.8%)보다도 낮으며 이명박 정권의 집권 공약인 747(성장 7%, 소득 4만달러, 7대 강국)을 반토막 낸 수치다. 한층 놀라운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론 몇몇 민간 경제연구소의 전망보다도 낮다는 점이다.

박 장관은 이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과거) 전망치에 목표를 담아 높게 발표해 온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 상실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책의지니 뭐니 기대치를 높였다가 실망시키는 일은 사양하겠다는 표현이다.

불황의 예언에 뜻밖에도 박수가 나왔다. '용감한 전망'이라는 찬사도 따랐다. 선거의 해에 쏟아질 정치권의 복지예산 수요와 경기부양 욕구를 사전 차단하는 결단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제야 꿈을 깼다'라는 아리송한 평가도 있었다.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정부의 대책 없는 큰소리나 엉터리 통계에 한두 번 속은 국민이 아니다. 'MB물가지수'니 '고용 대박'이니 하면서 허풍 떨던 생각을 떠올리면 속이 뒤집힌다.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던 외환위기의 악몽도 있었다. 내년 양대 선거가 재정에 어떤 압박을 가할지 뻔한 상황에서 빗장을 걸겠다는 박 장관의 결기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우선 그동안의 박 장관 행적이 그렇다. 얼마 전에도 "747 공약은 폐기된 것이냐"는 질문에 "언젠가 이루어야 할 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논리라면 내년은 꿈도 목표도 다 접었다는 얘긴가.

3.7%란 숫자도 묘하다. 4% 안팎을 고민했다는 재정부가 왜 OECD나 KDI 전망보다 더 낮은 성장률에 방점을 주었을까. 정책의지의 배제를 강조하려는 과장된 의지의 표현은 아닐까. 기실 재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내년 성장률을 4.5%로 제시했었다. 예측 기관마다 전망치를 낮췄지만 눈도 꿈쩍하지 않던 곳이 바로 재정부다.

성장률이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은 경제운용 계획보다는 예산이다. 세금을 얼마나 거둬 얼마를 쓸 것인지 따지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4.5%를 기준으로 예산을 짜고, 국회의원들이 다투어 지역구 예산을 챙긴 뒤에야 3.7%를 앞세워 곳간에 빗장을 채우겠다는 얘기다.

3.7%를 합리화하기 위해 궤변도 불사한다. 성장률 전망이 4.5%에서 3.7%로 낮아졌는데도 세수에 문제없다는 것이다. 올해도 생각보다 더 걷혔으니 내년에도 그럴 것이라는 게 논리라면 논리다. 그 말이 맞다면 4.5%를 전제로 한 예산안 세수 추계는 엉터리가 틀림없다. 신뢰를 담보로 한 저성장률 뒤편에서 허수의 세수가 신뢰를 허문다.

불황과 긴축을 강조하면서 내세운 '일자리 최우선' 구호, 그래도 가계 구매력은 살아난다는 역설, 공기업 개혁을 외치며 채용은 40% 늘린다는 발상…. 한편으로는 더 나빠지면 추경도 불사한다며 뒷문도 슬쩍 열어뒀다. 삶이 고단한 서민은 헷갈린다. 박재완 경제의 정책의지와 난국 타개책은 뭔가. 그 정체는 용기인가, 무책인가, 꼼수인가. pmhoon@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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