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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안철수와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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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사람을 발가벗겨 광화문에 세워놓는 것"

[아시아경제 이의철 기자] 
3년전 쯤으로 기억한다. 안철수 KAIST 교수(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와 '시골의사' 박경철(안동 신세계연합병원장)을 2주 간격으로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그땐 안철수와 박경철이 지금처럼 '청춘콘서트'로 엮일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나아가 유력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치인 안철수는 더더욱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시 안철수 교수는 미국 유학을 막 끝내고 돌아와 KAIST에서 강의를 맡았을 때였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가르친다며 상당히 기대에 차 있었다. '시골의사' 박경철은 주식시장에서 '낙관론'으로 일관하던 기관에 맞서 용감하게 '비관론'을 주장하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을 연달아 인터뷰한 것은 우연이었다. 불행히도 기자에겐 3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없어, 둘을 연관시킨 질문은 하지 못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때의 취재수첩을 꺼내보았다.

안철수와 박경철 둘 다 인터뷰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무언가를 끄집어내야 하는 기자는 어려운 상대와 힘겨운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인터뷰에선 두 사람 모두 교장선생님 처럼 '공자님' 말씀만 했다. 위선(僞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지만 안 교수에 대한 인터뷰는 결국 이렇게 쓰여졌다. "안철수는 심지가 곧았고, 품성이 뒷받침됐으며, 컨텐트가 있었다. 심지어 겸손했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췄다. 안철수는 천재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공부가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했고, 성공한 벤처기업가였지만 '운이 좋았을 뿐, 굴곡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음'을 토로했다."
안 교수는 그때 여름감기가 걸려 고생을 했는데도, 인터뷰가 끝나고야 그 사실을 얘기했다.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를 한번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박경철에 대한 인상 역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표정변화도 없고,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 세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열등감,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그렇다고 딱히 꼬투리 잡기도 힘든 무언가를 내면에 갖고 있었다.

스스로를 강의료가 비싼 강사라고 자랑도 했지만, 원칙에만 맞으면 무료 강의도 많이 한다고 했다. 3년 전 기준으로 인세와 강의료 등을 합해 월 수천만원의 수입이 있다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시민이다. 나이 50이 되면 내 호는 '시민'이 될 것이다. 그 땐 '시민' 박경철로 불러달라."

사람마다 인터뷰하고 나서의 느낌이 있는데 안철수가 개운했다면, 박경철은 텁텁했다. 되돌아보니 둘 사이엔 공통점들이 꽤 많았다. 우선 둘 다 다변(多辯)이다. 질문을 하면 답변이 즉시, 그리고 끊이지 않고 나왔다.

유머감각은 둘 다 실망스러웠다. 안 교수는 인터뷰 초반에 "부인 이름이 혹시 영희냐"는 기자의 썰렁한 농담에 표정 하나 안바꾸고 "아니오. 미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박 원장 역시 인터뷰 내내 예의 그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시종일관 진지했다.

"인생 계획을 세워 본 일 없고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삶의 자세나,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큰다"는 자녀 교육관은 신기하리만치 비슷했다.

정치란 사람을 발가벗겨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놓는 것과 같다. 안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검토, 뒤이은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에선 '안철수 신드롬'이 생겼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분석들도 한창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급하지 않게 이 두 사람을 한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들이 발가벗김을 견딜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괜찮은 정치인을 한 두명 더 얻는 것이고, 이들이 그걸 견딜 수 없다면 적어도 괜찮은 '학자'와 괜찮은 '시민'은 잃지 않는 것이니까.




이의철 기자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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