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취임한 최중경 장관은 사정이 달랐다. 집권 후반기가 되다보니 무언가 눈에 보이고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수 없었다. 기존 대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국정 후반비를 잘 마무리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 사이 물가가 폭등했고 동반성장에 대한 파열음이 커졌다. 최근에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폭풍을 맞닥뜨렸다. 9월 15일에는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 정전사태에 책임론까지 짊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2900여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히지 않았거나 병원 등지에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면 9.15정전에 대한 비판여론의 수위가 조금은 낮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었다. 결국 정부합동조사에서 인재(人災)와 관재(官災)의 산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지경부에 책임이 있고 관련자의 엄중문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리에 연연 않겠다던 최 장관에 대해 정치권에서 사퇴압력이 커졌고 여론도 그랬다. 26일 정부합동조사 발표 이후 청와대에서 다시 한번 장관사퇴요구가 나왔다. 27일 최중경 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에 이명박 대통령에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
최중경 장관의 기구한 낙마는 이번이 세 번째다. 최장관은 지난 2003년 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환율방어를 하다가 입은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현정부 들어 재정부 1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뒤 강만수 장관과 '최-강'라인을 형성했으나 역시 고환율 논란으로 4개월만에 물러났다.
최 장관 특유의 강성 언행과 정치권과의 마찰, 총선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민심다독이기 등이 종합적으로 묶여 이번 경질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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