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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칼럼]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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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는 국민들에게 충격과 비통 그 이상이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몇 마디를 남기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우리 곁 떠났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안타까운 소식에 황당할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말 그대로 파란과 곡절의 삶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의 길을 잠시 걷다 법복을 벗는다. 부림사건 변호를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뒤 정계에 입문, 5공 청문회에서 스타로 부상하며 '정치인 노무현'의 이름을 알린다. 비교적 순탄했던 그의 정치행보는 3당 합당에 반기를 들면서 험로로 접어든다. 그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마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마다하고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세 차례나 도전,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깨겠다는 그의 도전과 실험은 '바보 노무현'을 낳았고 그 '바보'는 권력의 정상에까지 오른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후진적 정치문화를 타파하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실험을 계속한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탄핵소추를 받았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그러나 재임 중에도 비주류였던 그는 시행착오와 거침없는 언행으로 기득권의 보수 세력들에게는 끊임없이 흔들림을 당했고 지지하던 진보세력도 '짝퉁 개혁'에 서서히 등을 돌린다.

퇴임 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낙향해 여생을 지역발전에 봉사한다고 했으나 소위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권력형 비리 수사 한가운데 서게 된다. 자신은 물론 부인과 자녀들까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도덕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살아왔던 그로서는 심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남은 자부심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인터넷에 "자기를 버려 달라"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특히 검찰이 그에게 적용하겠다는 '포괄적 뇌물죄'는 법조계 일부에서 조차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수사에 따른 정신적 압박은 더 컷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현 정부와 검찰의 책임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정치권의 '과거 정권에 대한 사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과 상통한다. 우리 정치권은 집권만하면 공권력을 전리품 정도로 여기며 과거 정권의 폐부를 파헤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곧 청문회가 열릴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도 권력과 이권을 송두리째 독점하려는 신권력층의 과도한 욕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비리가 있다면 빠짐없이 밝혀야 하겠지만 자칫하면 '과거'라는 소중한 자산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김해 봉화마을에서 서울 덕수궁 앞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는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몇 시간 차례를 기다리는 추모객을 보며 이 거대한 애도물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린 되새겨봐야 한다. 그들 마음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의례적인 예의부터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증, 그를 자살의 덫으로 몰아넣은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 권력에 대한 허망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한 속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꼭 짚어 단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권에 대한 불만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국민이 깊은 시름에 빠져있는 틈을 타 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사회분열을 획책하려는 시도는 '바보 노무현'의 서거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도 추모 열기의 뜻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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