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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베란다에서 자란 감나무 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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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단감나무 다섯 그루를 무덤 주변에 심었다.

당신의 식목 행사는 언제나 한결 같다. 아버지는 이번 한식에 감나무를 심기 위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묘목을 직접 길러 왔다. 재작년부터 스티로폼 박스에서 열 그루의 묘목이 자라왔지만 나는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중 다섯 그루가 선산의 무덤가에 심겨졌다.
"아버지, 접목을 해야 될텐데요. 고염밖에 더 열리겠어요 ?"
"모르는 소리 ! 요즘 단감 나무는 접목하지 않아도 제대로 다 열린다"
선산의 맨 아래쪽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운 무덤 주변에는 왕벚나무와 소나무가 뒤, 좌우를 옹위하듯 서 있다. 나무는 충분하다. 그러나 굳이 나무를 심는다.

"내가 죽고 나면 애들하고 따 먹거라. 추석 때 와도 줄게 감밖에 없을거다..."
아버지가 삽질을 멈추고 읊조리듯 나즈막히 말했다.
나와 여동생은 물을 주고, 감나무를 꼭 밟아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노년은 좀 괜찮은 것 같습니까?"
"뭘 더 바라냐 ? 살아온 날들이 다 재미 있었다."
"그런가요 ? 나도 당신의 고백이 만족스럽습니다."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그리고 나무를 심는 아버지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다 말았다.
"오늘 추억은 가슴속에 심자. 언젠가 이 추억을 아들한테는 꼭 가르쳐줘야겠다."

나의 마당에는 숲에서 옮겨온 나무들로 가득하다. 여주 강천 남한강변, 허물어진 폐가에서 옮겨온 산수유, 아파트 건설현장소장인 대학선배가 준 은행나무 세그루, 원적산이 고향인 고로쇠나무, 오가피나무, 가문비, 잣나무, 왕벚나무, 저절로 나고 자란 뽕나무들 등등

그중에서도 소나무 일곱그루는 집을 지은 이듬해 고향 뒷산에서 옮겨다 심었다. 고향 뒷산엔 소나무들이 울창하고 멋스러워 집짓기 전부터 옮겨다 심겠다고 별렀었다. 심을 당시 "애들이 자신과 함께 커온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였다.

본래 여덟 그루가 이사 왔다. 그중의 하나가 해송였다. 옮겨온 지 삼년째 금강이가 휘두르던 뭉둥이에 허리를 잘린 후 뽑혀졌다. 그래서 한국소나무를 따라 왔던 해송은 사라졌다. 소나무가 크는 모습을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지붕위까지 솟구친 상태다.

"소나무는 어려서부터 가지치기도 잘 해야 되고, 크는 방향이나 형태도 잡아줘야 값이 나간다"
이웃들은 항상 조언한다. 그들도 몇그루의 소나무를 가지고 있어 다들 소나무 키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조언을 모른 바는 아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톱을 가져다 가지를 쳐 버린 적도 있다. 딴에는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조언을 해오는 이들에게 "소나무가 제 맘껏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내 의견을 수긍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방문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왜 잘 가꾸면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별로 관리하지 않느냐는 투다.

살구나무와 관한 한 불화는 더 깊다. 유일하게 조경업자에게서 삼십만원을 주고 구입한 살구나무는 마당입구에 심겨져 있다. 살구나무 아래는 주차공간이다. 어느날 퇴근 후 가지가 험악하게 잘린 살구나무를 발견했다. 아내는 차 위로 벌레들이 똥과 이물질, 낙엽을 쏟아낸다고 가지치기한 것이다. 살구나무가 몹시 아파 보였다. 나는 살구나무 밑에서 한참동안을 울었다. 아이들이 와서 말리는데도 그랬다. 나는 울보도 아니고 누구에게 눈물을 보일 정도는 아니다.

처음에는 이웃들이 볼까 무섭다고 다그치던 아내도 다시는 나무 가지를 자르지 않겠다고 사정한 다음에야 눈물을 거뒀다.

"왜 나뭇가지 하나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거냐"
내가 눈물 흘린 이유다.

아내와 이웃, 방문자들 모두 간섭을 중단하지 않는다. 불화가 생긴다는 것은 염두에 없는 듯 하다. 간섭이 관심의 정도를 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런 불화와 관한한 내가 정당한 것 아닌가 ? 그렇다고 불화를 피할 수 없다. 즐길 방법도 거의 없다. 내가 값 나가는 소나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타협하기 어려운 일이라니.

그러나 나는 대개 회피한다. 톱을 들이대는 친구에게는 "술이나 하자고.나중에 내가 다시 생각해볼게"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도 항상 나무를 심었다.일부 돈이 된 적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마당의 향나무는 꽤 비싼 가격에 팔린 적 있다. 더 어릴 적엔 은행나무도, 팽나무도 팔렸다. 나무가 심심찮은 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아버지는 나무 심기에 열중한 것 같다. 그러다 얼마가 지나 더이상 팔 나무가 없어졌을 때는 관성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나무에 이름을 지어줬다. 마당가에는 여러개의 '셋째 나무'가 있다.

형이나 여동생의 나무들도 내 나무 숫자만큼 있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온지 오래이지만 지금도 해마다 나무를 심으러 간다.

그런 아버지와 나는 선산 한켠에서 나무를 심었다. 아버지가 심고, 아들과 내가 그 열매를 기다릴 나무 말이다. 간혹 살다가 이처럼 조화로운 날도 만나게 될 줄이야...
 
나무가 자라고, 아이들이 자란다.
나무와 아이들은 바람과 햇빛과 조건속에 있다.

아이들아
수많은 불화를 잘 견뎌라.
그리고 절대로 값나가게 크지 말거라.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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