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높은 지지율·재원 논란 불식 나서
"증세 효과 크지 않아…비과세·감면 방안 부족"
내년 지방선거 쟁점 될 듯…국회 통과 미지수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청와대가 증세 논의에 본격 나서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논의를 이끌고 청와대가 따라가는 모양새이지만, 당청이 물밑에서 만든 각본대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청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는 '증세 카드'를 꺼낸 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데다 178조원에 이르는 국정과제 재원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선 증세 논의가 예상보다 빨리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보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세금을 올리지 않는 건 정치권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으로 내각에 합류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전날 "표 걱정한다고 (증세) 얘기를 안 하면 안 된다"고 한 것도 정치권의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현 시점에서 증세 카드를 꺼낸 게 옳았는지는 내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증세 대상은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연) 소득 2000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과표를 신설해 25% 로 적용하자"면서 "이렇게 법인세를 개편하면 2조9300억원의 세수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로 돼있는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추 대표 증세안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 세제 전문가는 "실제 세수가 크게 늘어나 재정을 늘리는 효과보다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세금을 더 매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범주에 들어가는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100여개 정도다. 과세표준 5억원을 초과하는 사람들은 약 4만6000명(근로·종합·양도소득세 합계)으로 소득세 납부자(1465만명)의 0.3%에 해당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대선 당시 약속했던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줄여 법인세 실효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증세 논의에 먼저 착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재원을 언급, "비과세 감면 축소 등 세출 절감 방안은 구체성 떨어지고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했던 대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선 당청의 증세 논의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내다본 카드라고 분석한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추 대표가 들고 나온 세제개편안을 보면 실제 세수 증가 효과보다 정치적으로 지지층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더 커 보인다"면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반대하면 부자의 편에 서는 것이고, 이를 찬성하면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내년 지방선거에 활용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당·정·청이 증세를 위해 만든 세제개편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원칙적으로 법인세·소득세 인상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법인세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일부 야당의 존립 여부까지 좌우할 수 있어 증세 논의에 착수하는데 대해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