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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읽다]맹그로브 역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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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도서국가의 암울한 미래

▲수바 해안가에 맹그로브가 자라고 있다.

▲수바 해안가에 맹그로브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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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피지)=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올해 우리나라에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구 전체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나라 전체가 수몰 위기에 빠진 국가도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극복해야 할 '국제 공조 사업'으로 떠올랐다. 아시아경제는 2015년 [북극을 읽다], 2016년 [남극을 읽다]에 이어 올해 기후변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남태평양 도서 국가를 8월1일부터 10일까지 방문한다. [기후변화를 읽다]를 연재한다. 피지, 투발루, 통가를 현장 취재하면서 기후변화의 현재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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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공화국은 조용한 섬나라입니다. 해안선의 길이가 약 1129㎞에 이릅니다. 남태평양 도서국가 중 덩치가 큰 편에 속합니다. 피지의 해안가를 걷다보면 맹그로브를 가끔씩 만날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는 열대와 아열대의 갯벌인 하구에서 자라는 목본식물입니다. 바닷물에 뿌리를 박고 생존하는 특이한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맹그로브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시각입니다.
맹그로브는 홍수는 물론 바닷물이 육지로 차오르는 것을 방지하는 방어벽 역할을 수행합니다. 바닷물에 잠긴 뿌리는 물고기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생태계 보존의 첨병 역할도 거뜬히 감당합니다.

피지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 수바(SUVA). 서쪽에 위치한 난디(NADI)를 거쳐 수바의 나우소리(Nausori) 공항에 도착한 2일 오후 4시. 바닷가를 먼저 찾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산책하는 피지 국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안가 바로 곁으로는 넓은 잔디 광장이 있고 럭비를 즐기는 청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차오를 때는 인도 바로 앞까지 치고 들어옵니다. 이러다 바닷물이 벽을 넘어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설 정도였습니다. 수바 해안 벽(Sea Wall)을 따라 바닷물이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수바 시민들이 해안가를 산책하고 있다. 바닷물이 바로 옆에 있다.

▲수바 시민들이 해안가를 산책하고 있다. 바닷물이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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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우연찮게 바닷물에 잠긴 맹그로브 군락을 발견했습니다. 함께 간 박상태 주피지 대한민국대사관 1등서기관은 "예전에는 수바와 난디에 맹그로브가 무척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듬성듬성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바보다 난디에 더 많은 맹그로브가 있었습니다. 지금 난디에는 그 많았던 맹그로브를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맹그로브를 잘라내고 간척을 통해 그곳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죠.

이후 난디는 어떻게 됐을까요. 난디는 시도 때도 없이 홍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50년에는 난디가 바닷물에 잠길지 모른다는 전문가의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맹그로브의 역설입니다. 홍수를 방지하고 바닷물의 방어벽이었으며 생태계의 보호막이었던 맹그로브는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개발을 위해 싹둑 잘라낸 결과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거침없이 육지를 위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수바에 위치한 남태평양대학에 각국들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국기가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수바에 위치한 남태평양대학에 각국들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국기가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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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으로 이뤄져 있는 피지는 그나마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가 잠기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까지는 아직 아닙니다. 문제는 화산섬이 아닌 산호초 섬으로 이뤄져 있는 남태평양의 도서국가 투발루와 키리바시 등에 있습니다. 산호초 섬은 산호초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곳을 일컫습니다.

분출한 화산섬이 아니다보니 평균 해발고도가 5m도 되지 않습니다. 산이 아예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은 나라 전체를 수몰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오갈 곳이 없습니다. 그곳을 떠나는 것만이 해결책입니다.

수바에 자리 잡고 있는 남태평양대학(USP) 피터(Peter Nuttall) 박사는 "남태평양 도서국가 중 투발루와 키리바시는 30~6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며 "이들 국가들에게 기후변화는 더 이상 논의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피터 USP 박사.

▲피터 USP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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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박사는 "이미 투발루 등의 경우 인구가 줄고 있고 이주가 시작되고 있다"며 "호주와 뉴질랜드, 피지 등이 지금은 이들 국가의 이주를 받아주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라는 부분에 이르면 회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앨리슨(Alison Newell) USP 시니어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비난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전 세계 합의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앨리슨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기후변화 리더십을 잃었고 중국과 인도가 그 중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앨리슨은 무엇보다 파리기후협정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 부분에 이르면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남태평양 도서국가의 기후변화는 생존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와 관련돼 논의와 토론만 하는 사이 이들 국가들은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국제 공조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전문가들은 강조했습니다.

◆김성인 피지대사 "기후난민, 이제 생각해야 한다"

▲김성인 대사

▲김성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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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인 주피지 대한민국대사관 대사(58)를 2일(현지 시각)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그는 2013년 10월 취임했다. 그동안 그는 피지, 키리바시, 투발루 등 남태평양 도서 국가를 직접 찾았다. 남태평양 도서 국가는 14개 나라가 중심이다. 식민지 상태의 독립이 안 된 나라까지 합치면 22개에 이른다.

22개 국가는 PIF(Pacific Islands Forum)을 만들었다. 섬나라 개도국들의 모임이었다. 본부는 피지에 두고 각국들이 돌아가면서 회의를 진행한다.

PIF 회의에 참석하면서 김 대사가 본 남태평양 기후변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는 "키리바시와 투발루는 기후변화 문제가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처절했다"며 "산호초 섬으로 이뤄져 있는 이들 국가는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전체가 수몰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산호초 섬의 위기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막지 못하면 떠나는 수밖에 없다. 투발루는 9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실제 한 개 섬은 해수면 상승으로 이미 사라졌다. 두 번째는 바닷물이 밑에서부터 침투하기 때문에 식수 문제 또한 심각하다. 산호초 섬으로 이뤄져 있는 키리바시, 투발루, 마샬 아일랜드 등이 그 중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사는 "방어벽을 쌓아 막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며 천문학적 자본이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 대응에도 '부익부빈익빈'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모아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사모아도 침몰위기에 있는데 미국령 사모아는 자본을 투입해 방조제를 쌓아 막았다. 반면 서사모아는 계속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

녹색기후기금(GCF)에서 3600만 달러를 투입해 투발루에 방조제를 쌓고 있는데 역부족이라고 김 대사는 진단했다. 김 대사는 "이제 기후난민을 생각할 때"라며 "실제 키리바시와 투발루에서는 이주를 하는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사는 "이들 작은 도서국가 국민들이 이주를 하면 받아줄 수 있는 곳은 호주와 뉴질랜드, 피지밖에 없다"며 무상으로 이들 나라들이 기후난민에 땅을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사는 "공짜로 땅을 달라고 하면 그냥 주겠는가"라며 "실제 키리바시는 피지에 땅을 구매했고 키리바시 국민 2000명이 이주해 농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점에서 이제 전 세계는 '기후난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UN에서 기후난민에 대한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립해야 한다"며 "기후난민은 전쟁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발생하는 난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대사는 그 해결책 중 하나로 녹색기후기금의 강화를 꼽았다.

그는 "녹색기후기금이 지금은 기후변화를 막아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예방적 차원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를 확대해 기후난민에 대한 지원책 등을 내놓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키리바시와 투발루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키리바시에서는 해저심층수를 끌어올려 담수로 만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키리바시의 해수온도차를 이용한 발전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즉시 정화할 수 있는 설비를 키리바시와 투발루에 공급하는 관련 예산도 확보했다. 한 나라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UN차원에서 입체적 지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김 대사는 덧붙였다.


수바(피지)=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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