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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非' 떼러다 일 떼인 비정규직…희망고문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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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부산에 위치한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해 온 A씨는 다음 달 연장계약 시기를 앞두고, 최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간 업무평판이 좋아 연장계약이 확실시된 데다, 새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정규직 전환까지 기대했던 A씨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또 다른 비정규직 동료 3명도 A씨와 마찬가지로 7∼8월 연장계약을 앞두고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인사팀에 이유를 물었지만 '정규직 티오(정원)가 다 차서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새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연장계약 시기가 도래한 계약직을 대상으로 수급조절에 나선 게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비정규직 제로(0)화'를 전면에 내세우자, 산하 공공기관들도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본격적인 점검이 진행되기 전, 계약만료시기를 앞둔 직원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신규 채용 숫자를 줄이는 등 이른바 '수급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각 기관별 예산과 정규직 정원은 한정돼있는데, 정부방침을 지키지 않는 공공기관으로 낙인찍힐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계약연장을 기다리고 있던 일부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새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가 오히려 역풍이 된 셈이다.

경제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숫자가 많고 예산은 적은 기관으로서는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정부방침을 어기며 경영평가를 낮게 받을 수도 없다"며 "인사고과와 상관없이 일부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인천공항공사와 다른 기관들의 상황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전환 비율과 예산 등을 따져보고 있다"면서도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될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 수장으로 취임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부문에서 모범을 보이겠지만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도 이 같은 맥락과 연계된다. 재원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공약 구호를 100% 달성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정규직 수를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정책 본질이 훼손될 가능성도 크다. 또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일부 비정규직의 반발이 사회전체적인 갈등으로도 번질 우려까지 제기된다.

비정규직의 범위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현재 정부는 간접고용 형태로 해당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집계하지 않는다. 이에 따른 비정규직 수는 1분기 기준 3만7400명, 정원의 11% 상당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노동계는 무기계약직 등 소속 외 인력까지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관 내 무기계약직(약 2만3500명)과 기관 외 소속인 파견과 용역 등 간접고용(약 8만2300명)을 더한 비정규직은 14만 명을 넘어선다. 이는 정규직을 포함한 공공기관 전체 직원(32만8219명)의 3분의 1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향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거듭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한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공공부문 일자리 중 근속기간 3년 미만인 근로자의 비중은 전체의 32.2%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근속기간 2년 미만의 일자리는 27.5%로,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가 과거 비정규직법 입법처럼 정책의도와 달리 추진과정에서 악용되거나 변질될 우려도 존재한다.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이 남발되지 않도록 현행법 상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을 인정하도록 강제한 데서 출발했지만, 1+1 계약, 2년 후 해고 등 취지와 다른 고용형태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강제적인 비정규직 제로화는 또 다른 기형적 고용형태를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비정규직을 없애기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형태가 반드시 필요한 업무도 많기 때문이다. 부채가 많은 공기업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후 신규 채용이 대폭 줄어들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청년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풍선효과, 역풍이 우려된다"며 "대규모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양산할 수 있는 고용구조부터 뜯어고쳐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를 통해 비정규직 전환기준인 2년을 '동일근무자의 근무기간'이 아닌, '동일업무의 존속기간'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경우 첫 2년은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누구를 고용하든 정규직으로 채용해야만 한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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