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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민낯]⑪불안정한 부모, 아이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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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결혼이 늘어난다…일본 유아 토끼장 살인사건으로 본 불안한 미래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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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최근 설문한 결과 10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사실혼(동거)이 유행할 것으로 보는 이가 전체 응답자의 47%를 차지했다. 불안정한 결혼 형태가 유행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법적 계약은 막중한 상호 책임감을 요구한다. 불안정한 결혼은 불안정한 가정, 불안정한 양육 형태를 만들 공산이 크다.

잘못된 인연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버림받고 학대받다가 결국 다른 사람을 들이받는 사람으로 자란다. 자주 다투는 부모, 책임감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결혼을 하더라도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것이다. 비극은 핏줄을 따라 이어진다는 의미다. 각박한 삶을 사는 저소득, 저학력자 가정은 더 큰 위험에 노출 돼 있다.
일본에서 지난해 말 일어났던 엽기적인 유아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모가 세 살배기 아이를 토끼장에 가두고 시끄럽게 운다며 입에 재갈을 물려 질식사하게 했다. 이들에게는 총 7명의 자녀가 있었다. 부부는 아이의 죽음으로 '행복한 가정'이 깨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을 동원해 죽은 아기의 시체를 암매장한 뒤 다음날 가족동반으로 디즈니랜드에 놀러갔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이시이 코타는 "귀축 가정 - 아이를 죽이는 부모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들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해치게 됐는지를 추적했다. 비극의 원인은 아이들의 조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 미나가와 시노부의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녀는 중학교 졸업 후 접대부를 하다가 만난 남편과의 사이에 5명의 아이를 둔다. 그 중 장남이 시노부였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유흥업에 종사했다. 매춘업소에서 일을 하며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아예 고아원에 잠시 맡겨두기도 했다. 시노부는 수차례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기억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도 사랑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20살이 될 때까지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초등학생들이랑 몰려 다니다가 여성 대상 술집인 호스트클럽에 취직하게 된다.
아내 미나가와 토모미의 어머니는 중학교 졸업 후 접대부를 하다가 주인 마담의 소개로 만난 호스트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토모미다. 호스트와의 사이에는 남자 아이가 한명 더 태어났다. 이후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고 다시 3명의 아이를 낳게 된다. 토모미의 어머니는 괴팍한 성격으로 이웃과 자주 싸웠다.

이웃의 성화로 토모미가 졸업할 때까지 이사만 무려 5번을 한다. 어머니는 재혼 후에도 호스트 클럽에 드나들며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토모미도 이런 어머니의 성 관념을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그녀는 학창시절 한 선배에게 "임신했다"며 낙태비용을 챙기려다가 거짓말이 들통나 퇴학 조치된다. 이후 어머니처럼 접대부 생활을 시작했고 손님의 아이를 임신해 미혼모가 됐다.

첫 아이를 낳은 후 토모미는 어머니와 함께 들른 호스트클럽에서 남편 시노부를 만난다.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동거를 시작한다. 이후 이들은 7년동안 새로 태어난 아기를 합해 총 7명의 아이를 길렀다.

7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상당한 돈이 든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무계획 그 자체였다. 정부가 지급하는 양육비만 월 30만엔에 달했지만 돈은 주먹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부부는 가게서 분유를 훔쳐 팔아 생계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집안은 엉망이었다. 7명의 자녀와 10마리의 개가 한데 뒹굴었다. 쓰레기가 곳곳에 쌓였고 아이들은 머리와 손톱을 제대로 정돈하지 못했다.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부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그들도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집안을 어지럽히는 둘째 아들을 토끼장에 가두고, 둘째딸은 개를 묶는 줄을 목에 걸었다. 이 행동이 '학대'인지조차 몰랐다. 시노부와 토모미는 본인이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믿었다. 이시이 코타가 입수한 미나가와 일가의 사진 중에는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하거나 함께 목욕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잘못된 양육방식이었지만 그들 나름의 애정이 존재했던 것이다.

저자 이시이 코타는 현대비즈니스 온라인판에 기고한 글에서 "어른이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올바른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그들의 자식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해 친부와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원영이 사건은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락스와 찬물을 덮어 쓴 채 차갑게 몸이 식어간 일곱살배기 원영이. 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손에 쇠고랑을 찬 이후에도 한결같이 "아이를 정말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공개 재판 당시 친부 신 모씨는 "아이에게 잘해주면 오히려 안좋은 결과가 나올까 우려됐다"고 진술했다. 계모 김 모씨의 변호사도 "두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려니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원영이 부모는 "둘이 잘 살고 싶었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시노부, 토모미 부부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원영이 부모가 자라온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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