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은빛 헬맷을 쓰고 청바지ㆍ청잠바를 입은 채 빽빽하게 들어찬 '백골단'의 장벽은 늘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그때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위대와 백골단의 싸움에 잠시 끼어들었다가 한 대 얻어 맞고 나가 떨어지면서 기자는 "이 광장이 뭐길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시위대는 광장을 차지하려 하고, 경찰은 무지막지한 물리력을 동원해 밀어내려 하는가.
결국 이 광장들은 2016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벌어진 '촛불시민혁명'의 공간적 배경이 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광장을 차지한 시민들은 장기간 악전 고투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힘을 모아 잘못된 권력을 축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저 겉보기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물리적 공간일 뿐인 '광장'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시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고대만 해도 광장의 주인은 시민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의 아고라(agora)나 고대 로마의 포룸(forum), 삼국시대 길쌈놀이와 제천행사가 열리던 '마당' 등이 그 사례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서로 소통을 하며 종교ㆍ정치ㆍ사법ㆍ상업ㆍ사교 등의 사회생활을 꾸려나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지속 여부, 청와대 앞 민주노총 농성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며 농성자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깨끗하게 정리돼 시민들이 산책하고 관광객 사진 촬영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얘기다. '시민의 품'이라는 말은 그럴듯 하지만, 독재로 돌아가자는 얘기로 들린다. 광장은 그런 용도로만 쓰는 곳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전쟁터다.
그때 그때 시민적 합의와 최소한의 규제에 따라 큰 불법만 없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 설사 그 곳이 청와대 앞길 한쪽 모서리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시장 취임 후 활성화된 서울시 열린광장시민운영위원회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관, 정치의 개입없이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광장 운영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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