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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조선시대 인어공주, 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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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미 죽향 상상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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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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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은 조선에서 알려진 여성화가로는 신사임당에 이어 '넘버 투'쯤 되는 대단한 여인이다. 특히 19세기 전반까지 활약했던 예술가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 추사 김정희와 살짝 염문을 뿌렸고, 추사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자하 신위도 그녀의 묵죽첩에 제시(題詩)를 써줄 정도로 잘 나가는 여류였다.

그녀가 남긴 그림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조화훼초충첩을 비롯해 몇 개의 소품류가 보인다. 붓놀림이 섬세하고 색깔 사용이 화사하여 여성적인 센스가 돋보이기는 하나, 그녀의 작품들을 걸작으로 꼽는 이는 별로 없는 편이다. 장미와 모란, 연꽃을 그린 것들은 화본(花本)을 충실히 옮긴 것들이고 원추리나 개양귀비, 금낭화 소재는 조선 초부터 유행하던 그림들을 답습한 자취가 있다. 19세기 명사들을 매료시켰던 것이, 빼어난 인물이나 시적 재능 만이 아니라, 회화 솜씨도 포함된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 개성적인 작품이 유실되었거나 숨어있을 것이라고 본다. 백양노인의 법식(法式)으로 그렸다는 화접도(花蝶圖)는 하늘거리는 꽃의 동세(動勢)와 거꾸로 날개를 돋운 나비의 비상이 생생하면서도 독창적인 느낌이 있다. 꽃 아래 자잘한 민들레류가 더불어 피어나 있는 것도 인상 깊다.
이 여인은 딱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희한하게도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전설이 존재한다. 이른바 조선판 인어공주 스토리이다. 그녀의 호는 낭간(浪?)이다. 아마도 중국에서 말하던 아름다운 옥돌인 낭간(琅 )의 의미와 평양 기생으로서의 넘실대는 파도(浪)의 느낌을 합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설화에는 이낭간(李浪奸)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평양 남문 밖에 살았던 이진수라는 어부의 딸이었다. 대동강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어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이진수는 물 속에서 나온 어느 여인의 팔에 이끌려 용궁으로 들어간다. 그는 용궁에서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대접받았는데, 떠나려 할 때 여인이 물고기 같은 것을 한 마리 내주며 이것을 먹고가면 불로장생하리라 귀띔한다. 이진수는 그걸 먹지 않고 몰래 숨겨 뭍으로 가져왔다. 이걸 딸이었던 낭간이 발견하고 인어육을 맛있게 먹어버렸다.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낭간은 평양의 제일 가는 미인이 되었고, 늙지도 병들지도 않았고 갈수록 아름다워져 뭇 사내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런데 낭간이 대동강의 인어육을 먹어서 불로의 몸을 얻었으나, 그녀와 잠자리를 하면 명을 못 채우고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 아무도 청혼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기생이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낭간과 사랑을 나눴던 모든 남자들은 정말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갔다. 120살이 된 낭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200살엔 모란대 암자에 들었으며 300살 이후엔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아직 200살까지 밖에 안되었으니 지금은 모란대에 있어야 할 여인이다.  낭간은 용호(蓉湖)어부라는 기이한 호도 썼는데, 연꽃호수의 어부라는 의미이다. 자신이 인어공주임을 이렇게 표현해놓은 것일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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