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빼어난 말그림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ㆍ1724~1806)의 붉은 경주마 그림 '휘슬 재킷'을 꼽는 이가 많다. 스텁스는 '말의 해부학'이란 책을 낼 정도로 근육 움직임과 뼈의 구조에 통달한 화가였다.
중국 당나라에도 스텁스 같은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대시인 왕유의 집에 술집서 일하는 소년 하나가 빚을 받으러 왔다. 집사(執事)가 돈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소년은 집 마당에 커다란 말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돌아온 왕유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생동감 있는 말 그림은 처음 본 것이다. 왕유는 술집 주인을 설득해 소년을 데려왔고, 당시의 대(大)화가 조패에게 제자로 보냈다. 이 사람이 한간(韓幹ㆍ?~780)이다. 그가 유명해지자 현종황제가 불러 황실에서 근무토록 했다.
한간은 서역과 활발한 교류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던 당나라에서, 당시 세계의 진보적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리얼리즘의 공기를 '자생적으로' 체득한 기이한 화가였다.
현종황제가 탔던 명마 이름이 조야백인데, 그 흰 털이 눈부셔서 밤이 환할 정도라는 의미이다. 막 끌어온 사나운 준마를 굴레와 고삐로 조여놓았는데, 말은 성난 눈을 하고 입을 벌린 채 더운 김을 몰아내며 솟구치려는 듯 네 발로 땅을 쳐올리는 중이다. 그 펄펄 살아있는 생기와 근육들의 긴장감, 들릴 듯한 울음까지를 담았다.(나는 이런 리얼리즘이 이 땅의 신라 처용가(헌강왕대는 100년 뒤다)보다도 앞서서 중국에서 꽃피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한간은 동양 회화의 한 줄기를 1000년 앞당길 수 있었을, 그러나 당시 동양화의 관념의 고삐와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었던 성난 '명마'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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