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값을 지불할수록 인간은 타인과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택시가 그렇고, 비즈니스 클래스가 그렇다. 인구의 밀도가 희박해지면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건 어렵지 않다. 나는 절로 너그러워질 만한 형편은 못 되는 쪽이지만, 그 자체는 괜찮다.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다만 ‘같은 처지’끼리 미워하게 된다는 게 슬프다. 밟지 마, 밀지 마, 소리 내지 마. 정작 일평생 지옥을 경험할 일 없는 이들은 열차 승차권 발매기에 지폐 몇 장을 한 번에 집어넣기도 하던데.
엄마는 한동안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윗집에 두 살배기가 있는데 하루 종일 콩콩거린다고 하소연했다. 가서 직접 들어보니 두통이 생길 만도 했다. 게다가 밤 10시가 넘어가자 ‘콩콩’이 2배속이 된다. 엄마 말이, 아이가 종일 할머니랑 있다가 저녁에 부모가 퇴근하고 오면 좋아서 더 저런단다. 사정이 그렇다 해도 심하긴 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 엄마는 드디어 윗집 벨을 눌렀다. 결국 충돌을 피할 수 없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좀 보러 갔다고 했다. ‘콩콩’만으로는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그게 콩알만 한 아이의 소리라는 걸 알면, 그러니까, 콩콩대는 콩알의 얼굴을 알고 나면 좀 두통이 덜할 것 같아서. 할머니 품에 안겨 나온 아이는 물론 아이였다. 작고 보송하고 무구하며 뛰어다니는. 아이의 할머니는 연신 죄송하다고 했단다. 그러나 조부모들은 대개 손주들을 어쩌지 못하고 아이는 변함없이 뛰어다녔지만, ‘콩알의 얼굴’을 보고 내려온 뒤 엄마는 두통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中) 지옥 속에서 사람을 저런 마음보로 대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므로 저 말은 말을 넘어 시가 되었을 테다. 그렇지만 가끔 뒤통수에 트림이 날아올 때 생각한다. 트림의 주인에게도 얼굴이 있다. 얼굴들은 일생을 가졌다. 어쩔 수 없이, 나처럼.
이윤주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