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향으로 남고, 빌 게이츠가 못내 얄미우면서도 그의 당당함에 진한 물음을 새긴다. 약소기업이 대기업의 것을 버젓이 도용하고, 또 그것이 업계와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애플과 MS,모두 무사히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무엇인가가 실리콘 밸리, 미국, 더 넓게는 서구에 있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별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홍길동’과 ‘전우치’가 있다. 그들도 권력과 부의 격차를 둔 힘 있는 자들을 상대로 용맹과 지략을 펼친다. 다름은 이야기의 후반에 있다. 양치기 소년은 거인을 쓰러트려 승장이 되고 왕위까지 얻어 이스라엘 대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약소민족이자 약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성공 스토리는 서양문명에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약자’의 도발은 신의 가호가 함께한다.’ 반면, 우리의고전영웅들은 게릴라 활동 후, 섬이나 산속으로 도망치듯 자취를 감추고 만다. 승리도 전복도 이루지 못한 채.
앞서 언급한 영화의 원제는 ‘Pirates of Silicon Valley’다. 직역하면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이다. 한국 정서로는 ‘해적’의 부정적 이미지를 우려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조건, 상황, 환경 등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 언제나 ‘바른 규칙’을 지키고 ‘정당하게’ 싸워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다. 헌데, 우리의 현실에서 이는 쉽게 오용된다.‘약자’의 ‘강자’에 대한 도발은 불가하고, ‘가난한 자’가 ‘가진 자’의 것을 도용하는 것은 용서 안 되는 사회에서 그 역은 비일비재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겐 ‘무죄추정’이, 가난한 자, 힘 없는 자에겐 ‘유죄추정’이 적용되는 사건들을 우리는 자주 목도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신생 벤처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거대 인프라와 마케팅을 활용해 시장점유에 성공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봐야 한다. 법의 공정성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공감하는 판결들로 상처 입은 지 오래다.
김소애 한량과 낭인 사이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