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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공공기관 개혁의 두 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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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차에 들어선 박근혜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공공기관 혁신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현오석 부총리를 필두로 관계부처 장관들이 돌아가면서 공공기관장들을 만나 압박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예 방만경영 금지를 위한 지침을 만들었다. 공공기관들은 이달 내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들어 보고해야 한다. 임직원 가족에 대한 고용 승계, 자녀 학자금 지원, 무상 건강검진 등의 복지 혜택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공공기관의 부채와 관련해서도 특단의 대책이 나왔다. 부채 감축 지침은 현재 220% 수준인 공공기관의 평균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200% 아래로 낮추는 게 목표다. 지침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공공기관의 모든 자산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현 부총리는 최근 워크숍에서도 "공공기관의 우량 자산부터 팔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공공기관의 부채를 줄이고 방만경영을 일소하겠다는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과정과 결과에 있어 불필요한 잡음도 뒷말도 없어야 한다.

공공기관 방만경영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주인 없는 조직'이 가장 큰 요인 아닌가 싶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기관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노조는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인다. 기관장은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는 대가로 특별상여금이나 위로금이나 또 다른 무언가를 약속한다. 정권이 바뀌고 새 기관장이 선임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봐 왔던 모습이다. 기관장도 노조도 '내 돈 아닌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면합의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기관장 돈도 아닌, 노조 돈도 아닌 이 돈은 바로 국민 세금이다.

방만경영을 없애는 건 조직 내 퍼져 있는 모럴해저드를 불식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런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개혁의 시늉만 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방만경영 일소는 말 그대로 기관장의 '목을 걸고' 해야 한다.
부채를 줄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의 과다한 부채를 줄이는 것 자체는 대단히 옳은 방향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실효성 여부다. 예컨대 공공기관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이 나중에 감사원 감사의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만일 공공기관의 담당부서가 A라는 자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는데, 나중에 감사원이 "왜 이렇게 싼 가격에 팔았냐" "왜 하필 이 시점에 팔았냐"는 지적을 하면, 당시 결정을 내렸던 실무자는 옷을 벗어야 한다.

특히 요즘 감사원은 감사에 '배임'의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투자증권을 매각할 때 우리금융 이사회조차 '배임'의 이슈 때문에 최종 순간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요는 "돈을 더 받을 수 있는(공적자금을 더 많이 회수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데, 왜 특정 매각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느냐"인데, 그렇게 따지면 파는 결정도 배임이요, 팔지 않는 결정도 배임이다. 나아가 모든 손절매는 배임이다.

감사원이 배임의 잣대를 들이대면 공무원 사회에서 상당수의 결정은 '배임'의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굳이 '변양호 신드롬'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전 정권의 국책사업이 정권이 바뀌면 혈세를 낭비한 사업이 되는 것이고, 현 정권이 추진한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이 다음 정권에선 국가 재정을 멍들게 한 정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공무원은 학습효과로 이 같은 메카니즘을 체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5년짜리 정권에 자기 인생을 걸 직업 공무원이 있을까?

현실이 이렇다면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어느 누구도 '감히' 자산 매각을 '결정'할 수 없다. 공공기관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런 한계와 모순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한다. 아예 공공기관 자산을 매각할 때 사전적으로 감사원을 참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공무원의 정책 판단에서 '배임'의 굴레를 벗겨주는 것은 공공기관 개혁, 나아가 집권 2년차 박근혜정부의 성공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의철 정치경제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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