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폐사지 근처에는 오두막 같은 작은 절이 한 채씩 있기 마련이다. 절주인은 폐사지가 주는 허허로움이 좋아 잠깐 들렀다가 '필'이 꽃혀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은 없어져도 그 명당터는 남기 마련이다. 커다란 고목에 매달린 작은 매미처럼 존재감은 없지만 그래도 '노 프라블럼'이다. 어차피 터가 좋아서 머무는 까닭에 볼품없는 집이 문제될 리 없다. 봉갑사 K스님은 15년 전에 이 자리로 왔다. 이름만 전하는 절터에 고찰의 흔적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저기 손보고 땀 흘린 덕분에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춘 절이 됐다. 후발주자는 '따라하기'가 제일 쉬운 홍보방법이다. '호남삼갑 봉갑사'가 이 절의 카피였다.
'갑'절이 있으면 '을'절도 있을 터. 삼존불의 초기형태인 태안마애삼존불은 태을암(太乙庵)에 소재하고 있다. 울산의 은을암(隱乙庵)은 신라 박제상의 부인이 새(乙)가 되어 숨었다는 바위가 있다. 이처럼 '을'에는 갑을의 '을'이라는 의미가 전혀 없다. 사실 갑절도 사상ㆍ이념적 명칭에 불과할 뿐 갑을 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천간(天干) 혹은 십간(十干)의 첫글자인 갑은 '제일'이라는 경외감까지 스며들었다. 옛사람들은 소중한 자녀들을 갑돌이, 갑순이로 불렀고 '아무개'를 '모갑(某甲)'으로 쓰던 시절도 있었다. 농경시대 큰부자를 의미하는 갑부(甲富)라는 말 속에는 수전노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웃에게 베푸는 착한 부자라는 뜻도 있다.
'갑'의 지나친 행위로 '갑질'이란 부정적 표현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갑과 을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갑이 을이 되기도, 을이 갑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치다. 돌아오는 길에 봉갑사가 이름 그대로 삼남(三南)지역에서 곧 봉황처럼 훌륭한 갑절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원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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