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 큰집 찾아가는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내친김에 산자락으로 들어섰습니다. 산새 발자국 하나 없습니다. 혼자서 숫눈을 밟고 가자니, 동심(童心)이 일어납니다. 옛날 국어책 한 줄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옵니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 갑니다.”
꾸며진 소리가 실제보다 더 진짜 같습니다. 뽀드득뽀드득. 참 곱고 어여쁜 소리입니다. 구둣발에 짓눌리는 것들이 그렇게나 점잖은 소리를 냅니다. 신음(呻吟)소리라고 해도 말이 되질 않습니다. 너무도 야무지고 앙증맞은 까닭입니다. 소리의 여운이 하도 환하고 개운해서, 치약 광고에도 쓰인 적이 있었지요.
누군가 제 발자국을 따라오면서, 효과음을 내주는 것만 같습니다. 로드무비의 주인공이 된 기분입니다. 한참 서서 먼 산을 봅니다. 싱겁게 점프도 해보고 입김도 하얗게 뿜어봅니다. 몸을 빠져나간 온기만큼, 달고 서늘한 기운이 입안으로 들어옵니다. 바람결이 해금(奚琴) 선율처럼 청량합니다.
‘와운당(臥雲堂)’은 그 어른 계신 곳. 지금쯤 사방에서 제자들이 그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을 것입니다. 벌써 도착한 사람도 있고, 저처럼 아직 길에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해도 바뀌고 마침 당신 생신이기도 하여 함께 뵙기로 한 것입니다. ‘와운당’은 ‘구름이 누운 집’. 지리산 뱀사골 ‘와운동’이란 데서 온 당호(堂號)입니다.
당신이 평생 다니신 곳 중에 그만큼 한갓지고 평화로운 데도 드물었다지요. 말씀 끝에 나온 이름인데,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몇 사람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누울 와(臥)’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눕는다’는 글자가 왠지 석연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찬성한 이들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구름은 정물(靜物)이 아니다. 소나무가 눕는 것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름이 길게 눕는 것이야 어디 염려할 일인가. 구름은 불노불사(不老不死), 천변만화의 조화로 천지를 적시고 만물을 기른다. 앉았나 싶으면 일어나고 누워도 오래 눕지 않는다.”
저도 그쪽에 한 표를 보탰습니다. 구름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소년과 같으니까요. 언제나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안고 살아 움직입니다. 어디서나 천하를 덮을 기세로 날아다니며, 지상의 사람들을 설레게 합니다. 가끔은 악동처럼 인간을 애태우고 놀라게도 하지만, 긴 세월을 놓고 보면 구름의 움직임은 대부분 선행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운종룡 풍종호(雲從龍 風從虎).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짐작컨대, 구름과 용과 바람과 범은 가까운 사이일 것입니다. ‘와호(臥虎)와 장룡(藏龍)’의 주소가 어디겠습니까. 바람 길이거나, 구름숲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와운당’의 의미도 제 마음대로 읽고 싶어집니다.
“구름을 선생님이라 해도 좋지만, 제자들이라고 봐도 좋겠다. 천지사방 분주히 떠다니던 구름들이여, 이리 와서 쉬어라. ‘와운당’은 그대들의 쉼터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선생님은 ‘와운선생’이 아니라 ‘와룡(臥龍)선생’. ‘공명(孔明)선생’과 동명동격(同名同格)이시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우연의 일치일까요. 선생님은 경진생(庚辰生) 용띠, 여기는 용인(龍仁) 땅. 구름들이 모여듭니다. 지치고, 찢기고, 때 묻고, 상처받은 구름장들이 내려옵니다.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정선 아라리’ 가락으로 모여듭니다.
오늘 이곳 하늘엔, 구름의 향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용과 용의 처소에 모여든 구름떼’가 늦도록 사랑과 우정을 나눌 테니까요. 쉬어가는 구름, 울고 가는 구름, 자고 가는 구름..... 오늘밤, 와운당은 구름의 호텔입니다. ‘구름’이란 제목의 제 시 한편 매달아놓고 싶습니다.
“무엇이 되어볼까, 궁리하는 새에/ 벌써 몇 세상이 떴다 집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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