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팔로스에는 전설이 따로 있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아들이 권좌를 빼앗으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는 운명을 피하고자 아내 레아가 아이를 낳는 족족 삼켜버린다. 레아는 여섯 번째 아이 곧 제우스를 낳자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그 돌덩이의 이름이 옴팔로스다. 돌을 삼키고 속이 거북해진 크로노스는 이미 삼킨 제우스의 형과 누이들을 토해냈다. 모두 갓난아이 꼴로 세상 빛을 다시 봤다. 그래서 가장 늦게 태어난 제우스가 맏이가 된다.
소크라테스나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기구했다. 제명에 못 죽거나 사람다운 삶을 버렸다. 무릇 세상의 중심이란 곳은 모진 소용돌이가 쳐서 무엇이든 남아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은 늘 제가 중심이고자 하며 제 사는 곳을 세상의 중심이라 우기니 이 또한 운명이라. 세상의 중심에 풍파와 죽음뿐이라면 아무도 그곳에 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영웅은 그 뜻이 아무리 웅혼해도 주군으로 모시기에 적당하지 않다. 함께 목이 떨어지면서 후회해도 소용없고, 때로는 그 주군이 죽음의 사신일 수도 있다.
'꿈 많은 열일곱 소녀 아키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그는 첫사랑 사쿠에게 부탁한다. 호주 원주민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울룰루에서 죽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고. 두 사람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병원에서 빠져나와 공항에 간다. 하지만 거기까지. 아키는 죽었고, 17년이 지났다. 첫사랑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쿠는 아키의 유골을 지니고 있다…’
구투(舊套)로 범벅이 된 영화지만 혼란과 죽음에 뒤덮인 세상의 중심을 사랑으로 정화하기에, 그래서 그곳에 사랑이 깃들었기에 참을 수 있다. 장맛비 추적거리는 여름밤에 식구들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리메이크한 우리 영화는 권하지 않는다. huhball@
꼭 봐야할 주요뉴스
"하이브 연봉 1위는 민희진…노예 계약 없다" 정면...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