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색은 깨끗해 떠돌아다니는 사정은 아닌 듯했고, 얼굴에 딱 맞는 안경도 쓰고 있었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인은 홀로 있었고, 자리에 앉았다 섰다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무척 공격적인 표정과 태도였던 탓에 승객들은 거리를 둔 채 그저 지켜만 봤다. 졸지에 원망의 대상이 된 기사 역시 더이상 요금 얘기를 꺼내지 않고 버스를 모는 데에 집중했다. 차 안에는 불안의 기운이 감돌았다.
행선지가 마침 같았던 터라 그 뒤를 따라 내렸다. 더 움직이지 못하고 노인의 발끝을 지켜봤다. 어디를 가는 걸까,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을까. 잠시 뒤 '끼익',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뒤따르던 버스가 멈춰 섰고, 그 앞문으로 허겁지겁 백발의 노인이 뛰어내렸다. 구순은 족히 돼 보이는 할머니. 굽은 등을 일으키며 종종걸음을 치는 백발노인은 노여움 반 반가움 반인 표정으로 빽 소리를 질렀다. "왜 네 마음대로 타, 왜!".
거리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여럿은 각자의 행선지로 흩어졌다.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보호자를 만났으니, 그 정도면 행인들에게는 해피엔딩이었던 셈이다. 이후는 노인과 더 나이든 백발노인의 몫이었다. 그 뒤로 버스와 지하철에서 때때로 길 잃은, 혼자인 그리고 주변을 불안하게 하는 서울 난민을 마주칠 때마다 노인의 화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렇게 살지 말아요".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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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직장 잃을 위기에 놓였다…한국 삼킨 초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