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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문명의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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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구미 화엄탑사 주지)

명법스님(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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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이후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가 시끌벅적하다. 즉각 "지옥문을 열었다"며 "민중봉기"를 부르짖는 등 저항이 만만치 않다. 북핵 문제로 불거진 한반도의 위기 역시 심각하다. 당장 평창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질지 불투명하다.

2차대전 이후 크고 작은 국지전은 있었지만 세계는 유래 없는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상황은 문명 전체가 파괴적인 반환점에 도달했다는 보드리아르의 진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세계가 전례 없는 분노와 절망, 갈등과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지 자못 우려스럽다.
세계화가 긍정적이었느냐 아니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들을 경험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로를 호기심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은 짧았고, 이제 서로 다름을 공존시켰던 조정과 설득의 힘은 약해지고 핵과 무기, 경제력 등 물리적인 힘만 신뢰하는 세상이, 아니 원래부터 그랬지만, 잠시나마 본 면목을 가렸던 조정과 설득이라는 온건한 가면조차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도래한 듯하다.

중국사에서 송조는 당조 중반 이래 이어졌던 폭동과 전쟁을 종식시키고 통일왕조를 이룬 시대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은 송조의 엘리트들의 역사적 문제의식은 "폭력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무엇인가"였다. 그들은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힘이 "사문(斯文)", 공자가 그토록 역설했던 "문"의 힘에 있다고 보았다. 하버드 대학의 피터 볼 교수가 "This Culture of Ours"라고 번역한 "문"은 단순히 "문화"라고 번역할 수 없지만, 요와 순에 의해 건설된 중국문명의 인문적인 힘이 야만과 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당조의 내란은 효과적으로 극복했지만 주변 이민족의 침범까지 외교라는 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시도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유학과 선불교, 그리고 오늘날까지 중국문화의 토대를 이룬 사대부 문화는 그들의 믿음과 열정으로 이루어낸 결과이다. '문'을 야만으로부터 중국의 번영을 이끌어온 힘으로 평가하고 그 힘을 적극적으로 되살려내려 한 송조 엘리트의 문제의식은 문명이 오히려 파괴적인 힘으로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선례가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의 폭력성 역시 이미 임계점을 초과한 듯하다. 은밀하게 작용해온 국가에 의한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 역시 심각하다. 다시금 해상사고가 일어났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고 원인이 "알아서 피할 줄 알았다"는 무신경 탓이라니, 힘센 자들의 논리, 갑과 을의 논리가 사회의 상층뿐 아니라 하층까지 깊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 댓글 역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익명성에 기대어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론 슈퍼갑들의 폭력성이 세계를 폭력 속으로 내모는 주된 원인이기는 하지만 을도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면 언제든지 폭력적으로 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이 전면화되고 있다.
송조와 비교해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시대의 폭력성보다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바로 지금까지 인문적 세계를 지탱해온 인문적 가치들이 더 이상 우리들의 본능과 폭력성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이다. 송조 지식인들,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그들이 믿고 복원하고자 했던 인문의 힘을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 종교인과 학자들, 그리고 너무 쉽게 혐오와 배타의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명법스님(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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