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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60]화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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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아름다운 성이 있습니다. 화성(華城). 자동차로 삼십분이면 닿는 거리지요. 일과가 조금 일찍 끝나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 퇴근길이면 이곳으로 차를 몹니다. '행궁(行宮)'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오릅니다. 팔달산 정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화서문' 쪽으로 내려섭니다.

어둠이 깔리면 성곽 안쪽보다는 바깥 길이 더 좋습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서 발을 헛딛거나 넘어질 염려가 적습니다. 게다가, 성벽을 올려 비추는 조명등이 은은히 밝혀지는 시간입니다. 민낯도 눈부신 배우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오른 것처럼 매혹적입니다. 성곽과 하늘이 맞닿은 공제선이 사뭇 더 은근합니다.
오늘은 흔들리는 억새풀 너머로 달까지 떠올라서, 가히 숨 막히는 광경입니다. 공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어느 고을에 읍성 산성이 없겠습니까만, 여기만큼 태깔이 좋은 곳은 흔치 않지요. 어찌 보면 미소년 같고, 어찌 보면 헌헌장부입니다.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풍채는 기품이 있습니다.

빠지고 모자란 데를 찾기 어렵습니다. 눈 밖에 나거나 거슬릴 구석이 없습니다. 성벽을 이룬 돌들의 사랑은 이백년 동안 한결 같습니다. 돌과 돌 모서리 귀퉁이를 깎고 물려놓아서 아직도 서로를 꼭 껴안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조선 오백년을 통틀어도 단연 손꼽힐 만한 시간의 무늬로 빛나고 있습니다.

성벽과 누각이 만나는 곳엔 벽돌의 매력이 돋보입니다. 특히 '장안문'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甕城)과 '공심돈(空心墩)'에서 한껏 도드라집니다. 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이, 조선 건축도 중국처럼 벽돌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유를 실감합니다. 벽돌은 흙과 나무와 돌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재라는 이야기였지요.
물론, 우리라고 벽돌을 쓸 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안동 법흥사지탑과 여주 신륵사 강변의 장대한 탑이 좋은 증거입니다. 둘 다 전탑(塼塔), 벽돌로 지은 탑이지요. 여주 토박이 어른들은 지금도, 신륵사를 '벽절' 이라 부릅니다. '벽돌 탑이 있는 절'이란 뜻입니다.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될 만한 명물이었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 땅의 흙이 벽돌 만들기에 썩 알맞은 재료는 아니었나 봅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내려오며 점차 쓰임이 줄고, 벽돌을 굽는 기술도 시들해져갔습니다. 기술자도 점점 흔치 않아졌을 테지요. 전국에서 온갖 장인들이 모여들어 이 성을 쌓는데, '벽돌장(匠)'은 의주와 함흥 딱 두 군데 출신밖에 없더랍니다.

화성 축조 배경의 중심에는 '실학(實學)'으로 요약되는 근대정신이 있었습니다. 실용의 가치를 앞세운 세월의 시작이었지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이념을 군주가 몸소 실천했습니다.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며 반기고 따랐지요. 정조는 훌륭한 CEO였습니다. 할아버지(영조)만큼 오래 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누가 화성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을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화성을 명품으로 만든 것은 '공정거래(fair trade)'입니다. 여기 쓰인 돌 하나, 나무 하나 어느 것도 제 값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백성들이 양질의 자재를 골라오게 하고, 국가는 좋은 값에 사 주었지요. 당연히 좋은 물건이 모였습니다."

금전과 물자만 온당하게 오고 간 것이 아닙니다. "이 성을 만든 일꾼들은 막무가내로 동원되고 끌려오지 않았습니다. 나랏일이라고 무조건, 논밭 일 다 집어치우고 강제노역에 나서게 하지 않았습니다. 재주와 솜씨에 따라 적절한 소임을 나눠주고, 정당한 노임을 주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경험과 관록이 풍부한 이들은 모셔왔습니다. 목재를 잘 다루고 단청을 잘 올리는 스님이 있는 절에 공문을 직접 보내기도 했습니다. 분야마다 전문기술이 늘어나고, 장인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지요. 품값과 재료값이 옳게 매겨진 일의 품질이 최상의 것이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입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건축이 어찌 아름답고 견고하지 않겠습니까. 정조는 이 신도시의 건설이 백성들에게도 행복의 근원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지요. "민심(民心)을 즐겁게 하고, 민력(民力)을 가볍게 하는데 힘써야 한다."

효자임금이 지극한 '효심'으로 납시던 길, '을묘(1795)년 능행(陵幸)'이 사상최대 규모로 재현된다지요. 이번 주말, 수천 명의 사람과 수백 마리 말이 220년 전처럼 줄을 잇는답니다. 행차 길에도 백성의 삶과 민원을 챙기던, 정조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신까지 오늘의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욕심 같아선, 창덕궁에서 융릉(隆陵)까지 모든 장면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 한강 '노들섬'에 나가 어가(御駕)행렬이 배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나 보고 올까 합니다. 장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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