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청빈한 삶은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나라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한 법관이 박봉을 견디다 못해 가인을 찾았다가 할 말을 잊었다. "나도 죽을 먹고 살고 있소, 조금만 더 참고 고생합시다!" 가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 후배 법관들이 가인의 삶을 뒤따르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정신은 본받을만하다. 가인은 법원의 권위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에게 권위는 어깨에 힘을 주고 권력의 힘을 드러내는 그런 게 아니었다.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원천이었다. 법원이 국민 신뢰를 토대로 권위를 유지해야 사회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위험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임기가 끝나지만, 후임자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이어받을지는 의문이다.
헌법재판소장 부재 상태도 계속되고 있다. 박한철 전 소장이 1월31일 물러난 이후 200일이 넘도록 대행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장 공백 상황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더 문제다. 공백 상황이 길어지면서 여론의 시선도 무덤덤해지고 있다. 이제는 대법원장 동시 공백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사법부 수장의 공백에 내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사법부 수장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취급받는 게 어디 정상적인 사회인가. 정치권이야 어떻게든 해법을 찾겠지만, 땅에 떨어진 사법부 권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인의 일갈(一喝)이 그리운 요즘이다.
류정민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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