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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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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 1957년 퇴임사를 통해 남긴 말이다. 가인은 후배 법관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청빈한 삶은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나라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한 법관이 박봉을 견디다 못해 가인을 찾았다가 할 말을 잊었다. "나도 죽을 먹고 살고 있소, 조금만 더 참고 고생합시다!" 가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영하 5도가 되기 전에 난방은 꿈도 꾸지 못하게 했다. 가인은 담배 한 개비를 두 토막으로 잘라 피웠다. 점심 도시락을 갖고 다녔다. 비싼 기름 대신에 톱밥을 난방 연료로 사용했다. 과할 정도로 청빈하고 꼿꼿한 삶은 동료 법관을 곤혹스럽게 할 지경이었다.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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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후배 법관들이 가인의 삶을 뒤따르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정신은 본받을만하다. 가인은 법원의 권위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에게 권위는 어깨에 힘을 주고 권력의 힘을 드러내는 그런 게 아니었다.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원천이었다. 법원이 국민 신뢰를 토대로 권위를 유지해야 사회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위험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임기가 끝나지만, 후임자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이어받을지는 의문이다.
여권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법 수장 공백 사태가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한다. 야권 일각에서는 과거에도 대법원장 공백이 있었다면서 사상 초유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논쟁의 결론이 무엇이건 대법원장 인준 문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헌법재판소장 부재 상태도 계속되고 있다. 박한철 전 소장이 1월31일 물러난 이후 200일이 넘도록 대행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장 공백 상황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더 문제다. 공백 상황이 길어지면서 여론의 시선도 무덤덤해지고 있다. 이제는 대법원장 동시 공백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사법부 수장의 공백에 내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사법부 수장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취급받는 게 어디 정상적인 사회인가. 정치권이야 어떻게든 해법을 찾겠지만, 땅에 떨어진 사법부 권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인의 일갈(一喝)이 그리운 요즘이다.




류정민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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