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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눈사람/이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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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반쯤 뭉개진 눈사람이 서 있다
털목도리도 모자도 되돌려주고
코도 입도 버리고 눈사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수물질로 분해되기까지
우리는 비로 춤추다가 악취로 웅크렸다
지금은 찌그러진 지구만 한 눈물로 서 있다

눈사람이 사라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사람이 섰던 곳을 피해 걷는 것

당신을 만들어 나를 부수는 사이
뭉쳤던 가루가 혼자의 가루로 쏟아졌던 사이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지

■단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가 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그렇고, 윤동주의 「서시」가 그렇고, 이형기의 「낙화」가 그리고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그렇다. 이 시도 그렇다. “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눈사람’을 보면 문득 이 문장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을 따라 눈사람이 서 있다 사라진 자리를 피해 걸을 것이다. 아니 그 앞에서 한참 동안 막막해져서 오도 가도 못 하고 붙들려 있을 것이다.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가. 그런데 놀라워라. 지난 겨울 눈사람이 서 있던 그 “텅 빈 자리” 곁에 민들레가 돋아나고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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