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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82]그들 편에서

최종수정 2018.03.09 09:11 기사입력 2018.03.09 09:11

윤제림 시인
윤제림 시인

산골짜기 유원지 식당 골목입니다. 기와지붕을 이고 앉은 집 한 채가 눈길을 끕니다. 문 앞에는 닭의 '형상'을 한 조각이 있습니다. 실물 같습니다. 바깥벽엔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큼직한 나무 한 그루 아래, 토종닭 일가족이 보입니다. 한 마리는 날개를 번쩍 치켜들고, 손님을 부르는 포즈입니다.

벽화 한쪽엔 이렇게 씌어있습니다. '맛있는 토종닭'-○○식당. 닭의 머리 위엔, '저요!'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까 닭은 지금 '자기PR'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는 맛있는 토종닭'! 엎어놓은 항아리 위에 서있는, 닭의 발밑에는 구호를 닮은 일곱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잡는 토종닭." '언제든 몸 바칠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닭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비뚤어진 생각을 '바로잡고' 싶어집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숙소를 빠져나온 산책길이라, 저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급한대로, 제가 사람의 대표를 자청해봅니다. 닭에게 먼저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짐승을 시켜 손님을 부르다니! 잔혹한 일입니다. 뉘우칩니다. '인간 중심주의'의 야만성을 반성합니다. 순간, 눈치를 챘는지 닭의 형상과 벽화 속 그림이 소리칩니다. 반가움과 절박함이 뒤섞인 몸짓입니다. '꼭 좀 바로잡아 주세요!' 동지를 만난 것처럼, 닭들이 제 다리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물론 환각이지요.
[윤제림의 행인일기 82]그들 편에서

하지만, 울음 속의 메시지는 또렷합니다. 자신과 동족(同族)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을 떠맡은 자의 슬픔을 아느냐고 울먹입니다. 그리 생소한 풍경도 아닙니다.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면, 앞치마를 두른 돼지가 허리 굽혀 인사를 합니다. 어서 오시라고,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미소 띤 얼굴의 아기돼지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도 흔합니다. 물론 간판 속 그림이거나, 의인화한 캐릭터 인형이지요. 어느 횟집 입구엔, 낙지나 문어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손님을 맞습니다. 소고기를 파는 집 문간에서 소가 웃고 있습니다.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한우(韓牛)가 손님을 유혹합니다.
기시감(旣視感)이 있습니다. 모질고 독한 자들이, 일경(日警)의 앞잡이가 되어 동포를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언젠가는 저들을, '친일'이나 '부역'을 닮은 죄목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물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지요. 인간입니다. 곰의 쓸개만 빼 먹은 것이 아니라, 쓸개 빠진 꼭두각시를 만든 죄입니다.

소나 돼지나 닭을 자랑스러운 모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몹쓸 병의 조짐이 보일 때, 그들을 등장시키면 좋을 것입니다. 방역 일꾼들 옆에서, 소나 돼지가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협조를 부탁하면 어떨까요. 그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살(殺)처분'의 참극을 줄게 만든 보람을 주면 어떨까요.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디자인 모티프로 삼아도 좋겠지요. 1988년의 '호돌이'와 평창의 '수호랑과 반다비'도 부르면 달려와 도울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할 것입니다. 어른들의 노력만큼, 미래는 새로워집니다. 인간의 나라와 동물의 왕국, 양국관계는 평화로워집니다.

연례행사처럼 찾아드는 불청객을 막아보려고, 올해는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일찍이 팔을 걷어붙였다지요. '구제역 백신' 접종을 서두르며, 미리미리 철저한 예방조치를 해두겠다는 소식입니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백신'을 국산화하려는 노력도 반가운 시도입니다. 다양한 식물 유전자를 활용한다니, 더더욱 바람직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처방은, 동물에 대한 우리의 눈길과 손길입니다. 그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헤아려주는 일입니다. 사고의 모드(mode)를 동물에 맞춰봅시다. 마음의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봅시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마음 한번 고쳐먹으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동시 한편이 그걸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 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함민복, '반성'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된 사내처럼, 가끔은 강아지 눈으로 앞을 보기도 해야겠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눈앞의 꽃과 나무들, 곤충과 동물들의 마음이 되어보아야겠습니다. 경칩(驚蟄)도 지났으니 이제 곧 개구리들도 나오겠지요. 그 눈에는 제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인간의 위선과 허세를 해학과 풍자로 읽어내는 고양이가 주인공이지요. 아니, 고양이가 저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 이르니, 자주 마주치는 길고양이 한마리가 두려워집니다. 제 속을 들여다볼 것 같아서입니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시 제목 때문일까요. 고양이는 봄날이면 더욱 신령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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